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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딜로이트 공동기획 '이노패스트 15'-3] 휴대폰 부품업체 'KH바텍'

노키아도 감탄한 기술력…글로벌 회사 우뚝
'슬라이딩 모듈' 세계 최고, 노키아·삼성이 최대 고객
"경영은 자전거 타기 비슷…넘어지지않도록 페달 가속"

‘이노패스트 15’는 혁신(Innovative)과 고성장(Fast-Growing)을 주무기로 한 혁신형 고성장 기업을 가리킵니다. ‘한국 대표기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 기업들입니다.

중앙일보는 작지만 강한 15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스토리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의 컨설팅도 함께 소개합니다.

핀란드의 노키아.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메이커다. 고가 스마트폰 시장의 시장점유율은 3분기 현재 35%로 애플의 아이폰을 누르고 세계 1위다. 노키아의 간판 스마트폰은 N97과 N97미니. 이 모델의 핵심 부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다.

바로 경북 구미에 본사를 둔 KH바텍이 납품하는 거다. 말이 쉬워 부품이지 정확히는 휴대전화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장치다. 업계 용어로 '모듈'이라 한다. 2단계로 모니터를 밀어올리면 키보드가 나오도록 하는 슬라이딩 모듈이다. 노키아는 두 모델에 필요한 슬라이딩 모듈을 전량 KH바텍에서 사온다.

미국.유럽에서 히트한 삼성전자의 M550 모델에도 이 회사의 슬라이딩 모듈이 들어갔다. 경쟁 회사들이 같은 회사가 만든 모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경쟁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광희(50) KH바텍 사장은 "슬라이딩.폴딩 등 휴대전화의 외형기술(Form Tech)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세계 1 2위인 노키아와 삼성전자를 고객으로 뒀으니 KH바텍의 실적은 따져볼 필요도 없다.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은 1673억원으로 1년 전(685억원)에 비해 2.4배로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매출은 창사 이래 최대인 5000억원 정도. 영업이익도 308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133억7700만원)보다 2.3배로 늘었다. 우리투자증권의 이승혁 애널리스트는 "노키아로의 납품 비중이 늘면서 KH바텍은 명실공히 글로벌 휴대전화 부품업체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남 사장은 차분하다. "회사 경영은 페달 밟기를 멈추면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자전거 타기와 비슷합니다. 우리 기술이 지금은 세계 최고라고 자신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벤처에 강한 이스라엘의 벽지 어디선가 새로운 기술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죠. 쉬고 싶어도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합니다."

냉철한 현실인식은 아픈 경험에서 비롯했다. 2002년 5월 코스닥시장 상장 당시 KH바텍은 탁월한 기술력과 성장성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폴더형 휴대전화의 힌지(경첩) 기술과 고급 제품에 사용되는 마그네슘 외장제 구동부품 등을 결합한 조립모듈 부문에서 KH바텍은 경쟁업체를 한 발 앞서 있었다. 그 덕분에 2003년 한국의 유망 성장기업으로 선정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소개되기도 했다.

남 사장은 "WSJ에 기사가 게재된 이후 해외 기업설명회를 하면 유명 연예인 같은 대접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KH바텍의 휴대전화 부품 90%를 사가던 삼성전자가 공급망을 다변화했기 때문이다. 실적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사업을 집중 육성하는 삼성전자의 꼬리에 매달려 성장하는 전략은 현재로선 좋은 모델이지만 앞으로도 유효할 것인지는 의문"이라던 WSJ의 전망이 현실화된 것이다. 2004년 1016억원이었던 매출은 이듬해 833억원으로 떨어졌고 1992년 창사 이후 첫 적자를 냈다. 2004년 16.6%였던 영업이익률은 0.11%로 추락했다. 1000원어치를 팔아봐야 1.1원밖에 남지 않으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그는 "직원들과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지만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좁은 국내시장을 벗어나 세계 무대로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해외 공급망을 뚫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허사로 끝났다. 어렵사리 독일 지멘스를 잡긴 잡았다. 하지만 지멘스의 휴대전화 사업부가 대만 회사로 넘어가는 바람에 40여억원의 손실만 입었다.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사업도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또 2007년 말 노키아를 뚫었지만 제품 평가에만 1년이 걸린다는 답변이 날아왔다.

그러다 2008년 남 사장은 운명처럼 기회를 잡았다. 중저가 휴대전화에 집중하던 노키아가 삼성전자.LG전자에 쫓기자 중고가 제품을 생산하기로 한 것. 그러나 기존 부품 공급업체에서 만족할 만한 제품을 찾지 못하자 노키아는 KH바텍으로 눈을 돌렸다.

"해외 경쟁업체는 3개월이 걸리는 시제품을 2주 만에 납품했더니 노키아가 깜짝 놀라더군요. 즉시 계약이 성사됐고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지요. 노키아로선 이례적인 결정이었습니다."

한번 눈도장을 확실히 찍자 노키아의 시선은 180도 달라졌다. 이제는 노키아가 제품개발 단계에서부터 KH바텍을 참여시키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해준다는 얘기다. KH바텍의 기술진이 노키아 본사의 연구개발센터에서 아이디어.기술 설명회를 여는 일도 잦아졌다.

급격히 줄었던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도 이젠 전체의 2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한 곳이 막히면 다른 곳에서 활로를 뚫는 사업구조를 만든 것이다.

달성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하고 설정했던 '연간 매출 성장률 30% 영업이익률 16%'란 목표도 지난해 이뤘다. 실적이 좋아지자 지난해는 직원 성과급도 비교적 넉넉하게 돌려줄 수 있었다. 이게 남 사장에겐 큰 보람이다. '성공의 열매를 직원들과 함께 나누자'는 그의 경영철학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실천하게 된 것이다.

기술력 하나로 절망을 딛고 일어섰지만 남 사장은 오늘의 성공을 운으로 돌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기회가 오지 않는 회사가 많은데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운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자전거 페달을 밟을 겁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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