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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저, 여자 친구 있어요"

나는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자 친구를 사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음악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아들이 중창단을 만들어 다른 남자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일에 열심이니, 여자 친구 사귀는데에는 별 관심이 없나 보다 생각했다. 틈나는대로 자기들 부를 노래를 편곡하는 일에 몰두하는 아들에게 여자 친구라는 화제는 어쩌면 상관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또 매사에 세심하게 신경쓰는 것에 약한 아들은 스스로도 여자 친구를 위해 신경 쓰는 것은 대단히 ‘귀찮은’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귀챠니스트’인 아들이 밤 늦게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당분간 아들이 여자 친구 때문에 아내와 나의 신경을 쓰게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 달 쯤 전, 아들이 조심히 말했다.

“아빠, 저, 여자 친구 있어요.”

“그래?”

그 날 나는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마음 속에 곧바로 떠오르는 몇가지 질문을 참고 아꼈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데 행여 내가 궁금해서 묻는 질문들이 아들을 힘들게 할까 염려가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몇학년인지, 어느 학교인지, 뭐가 이쁜지,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짐짓 별 일도 아니라는 듯, “그래?” 란 한 마디만 하고 말을 아꼈다. 조금이라도 놀라는 척 했다가는 촌스러운 아빠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특별한 반응을 안하니 아들은 슬슬 여자 친구에 관해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자 아이는 9학년이란다. 그래서 같은 학년 친구들 사이에서는 ‘순진한 동생을 꼬드긴’ 선배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했다. 아들이 미국 오면서 학년을 올려 들어간 탓에 나이는 두 살 차이라는 계산이 금방 나왔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아들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여자 아이는 엄마 아빠가 모두 명문대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또 아들이 학교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호감을 가졌다가 서로 가까워졌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하는 남자들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맘 때 아이들이 이성교제를 해도 오래 가는 경우가 드물고, 또 시간이 흘러 나이를 더 먹고 고교를 졸업하면, 가까웠던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지나친 탐닉이나 시간을 무절제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아들이 많은 친구들과 만나면서 사람 대하는 기술과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원했다.

대학원 시절에 인간발달론(Human Development)에서 십대와 이십대에 이성 친구를 사귀거나 이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보통 사람의 일생에 일어나는 당연한 삶의 과정이라고 배운 것도 기억이 났다. 그래서 아들이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아들에게 유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정작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왜일까?

내가 신경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아들이 여자 친구의 존재를 말했던 시기에 아들이 한참 대학 원서를 준비해서 보내던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대학 입시의 마지막 과정에서 신중하게 원서를 작성하고 에세이를 써야 하는데, 아들이 여자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혹시나 방해가 될지 나는 무의식 중에 불편하게 느꼈던 것 같다.

다음으로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아들이 어느새 커서 여자 친구를 사귀니 나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느껴져서 갑자기 세월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전화기에 저장한 여자 아이 사진을 보여주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이 놈이 결혼을 하고, 나는 더 나이를 먹을 것이 틀림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나도 가면서 왜 이리 마음이 편치 않을까?

아들에 의하면, 아내는 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더니 제일 먼저 여자 아이가 한국계인지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이름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종과 민족이라, 아내는 까놓고(?) 물어 본 모양이다. 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듣기만 한 것과 조금은 다르게, 아내는 몇가지를 물어 본 것 같다. 아직도 인종과 민족을 따지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곧 들었다.

아내와 나는 인종과 민족 때문에 우리 아들이 차별 받는 것이 싫다면 다른 아이들에 대해서도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늘 생각해 왔다. 백인들이 현실적으로 우세한 사회이지만, 모든 사람이 인종과 민족의 차이를 넘어, 능력에 의해 평가받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한국계가 아닌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별스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 가족이 지난 12월 말에 두 주를 서울에서 보내는 동안, 아들은 여자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제법 신경을 썼다. 자기의 고향인 서울에서 여자 친구에게 무언가 멋진 선물을 주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아들이 ‘귀챠니스트’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이 누군가를 위할 줄 알고,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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