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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감옥에 있는 아버지

해마다 12월이 되면 미국 스포츠계의 관심은 ‘하이스만 트로피’(Heisman Trophy)를 누가 수상하는지로 모아진다. 8월 말부터 시작되어 3개월 이상 매주 토요일마다 미국인들을 경기장과 TV 앞으로 불러 모으는 대학 미식 축구 경기가 시즌을 마치면서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참여로 선정하여 수여하는 이 상은 75년간 해마다 한 명의 선수에게만 주어졌다.

포지션을 막론하고, 소속 학교의 시즌 성적과도 무관하게, 오직 한 선수의 경기력만을 평가하여 수여하는 이 상은 단순히 기록만으로 주어지지도 않는다. 약팀을 상대로 얻은 좋은 기록들은 강팀을 상대로 얻은 기록들보다 덜 인정받는다.

그래서 시즌 내내 전승을 거둔 학교의 선수들이 이 상을 받는데 반드시 유리하지만도 않다. 대학 팀이 내셔널 챔피언쉽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최우수 팀으로서 인정받는 것이라면, 하이스만트로피를 수상하는 것은 그 해 최우수 선수로서 인정받는 큰 영예이다. 그런데 지난 12월, ESPN -TV로 중계된 하이스만 트로피 시상식은 많은 미국인들을 눈물 흘리게 했다.

그 날, 텍사스대학교, 플로리다대학교, 앨라배마대학교, 네브라스카대학교 등 대학 미식 축구의 전통 명문 학교로부터 참석한 최종 후보 가운데 영예로운 수상자로 선정된 선수는 앨라배마대학교의 마크 잉그램(Mark Ingram)이었다. 열 아홉살의 나이로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본래 미시간 주 출신으로서,미시간 주의 고향에서도 그를 지도했던 은사와 친지, 가족들이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미식축구의 명문으로 꼽히는 앨라배마대학교 역시 그 동안 단 한 명의 하이스만 트로피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던 터라, 학교 안팍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왜 그 날 시상식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을까?

잉그램의 아버지는 뉴욕의 프로 미식축구 팀에서 활약을 한 유명한 선수였다. 아들이 미식 축구 선수가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고, 아들에게 아버지는 우상과 같았다. 아버지의 운동 신경을 물려받은 잉그램이 꼬마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미식 축구를 배웠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잉그램 집안에 불행이 닥쳐왔다. 아버지가 범죄에 연루되어 도피 중 체포되었다. 집을 떠나 온 그는 미시간 집에 있는 어머니를 걱정했다.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원망도 했다. 유명한 프로 선수였던 아버지가 돈 세탁 죄목으로 형을 살면서 감옥에서 자기의 게임을 늘 TV로 본다는데, 다른 선수들의 부모들이 경기장에 와서 응원하는 것을 보면 속도 상했다. 그런 아픔을 이기고, 잉그램은 매경기마다 최선을 다했다. 상대 팀 수비를 밀치며 달리고 달렸다.

그 날 밤, 수상자 발표 후 무대에 오른 잉그램은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말했다.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저는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잉그램의 눈에 눈물이 흐를 때, 많은 미국인들도 함께 울었다. 나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열아홉살 아들이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할 때, TV 화면은 시상식에 함께 온 잉그램의 어머니를 보여주었다. 웃는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나의 아버지를 나는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던가. 나는 아버지께서 감옥에 계셔도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연이어 나의 아들은 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궁금하다. 아니 자랑스러워하기는 하는지 궁금하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영어 실력이 나의 영어 실력을 뛰어넘었을 때부터 아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존경의 기운이 사라진 것 같다. 또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더니만,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다 쉽게 못해주는 나를 그 전처럼 보지 않는 것 같다. 미국에 관한 한은 자기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듯 나를 무시하려 하기도 한다. 아들 친구들의 부모들이 주로 미국인들이고, 모두 당연히 영어를 잘하는 고소득 아니면 고위직들인 것도 맘이 편치 않은 것은 내가 속이 좁은 탓일까? 내가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항상 방으로부터 나와 인사를 하는 아들이 고마울뿐이다. 어쩌면 아내는 더 신경이 쓰일 수도 있다.

내가 그나마 돈을 벌어 주니 아들이 내 말을 듣나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아내가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니, (나는 종종 아내가 우리 식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밥을 안 먹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이 아내의 말을 듣나 싶을 때도 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 없고, 미국인처럼 사고하지 않는 아내를 아들은 종종 답답하게 생각한다.

돌아보면 나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버지보다 과연 나은가? 아들로부터 얼마나 존경받는가?

나의 아들은 내가 감옥에 가더라도, 자기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사람들 앞에서 나를 자랑스럽게 기억할 것인가?

지난 주 내셔널 챔피언쉽 게임에서 잉그램의 앨라배마대학교는 텍사스대학교를 누르고 우승했다. 잉그램이 터치다운을 기록할 때마다 관중석의 잉그램 어머니는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잉그램의 아버지도 중계를 보았을 것은 틀림없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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