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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66] 2000년 10월 '클린턴 방북단'에 동행 확정…앨 고어 대통령 선거 패배로 아쉽게 무산돼

두 번의 만남을 통해 나는 클린턴의 신도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그에게 푹 빠졌다. 상대방을 사로잡는 대정치가의 면모 인간적인 모습의 실체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2000년 9월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초청 만찬에 참석했을 때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북한 측 인사들과의 조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의 분위기는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반갑습니다'라는 북한 유행가가 연주되었고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 자리에서 올브라이트 장관은 조만간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 후 나는 바버라 박서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으로부터 비밀 편지를 받았다. 10월 중 클린턴의 방북대표단에 나를 한인 대표로 추천했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다시 백악관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확인 편지를 보내왔다. 역사적인 현장에 동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흥분되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의 첫 방북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한 탓이었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되었더라면 미.북한 관계는 물론 남북한 문제에도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커져가는 한인사회의 목소리

나는 한인민주당협회 회장으로서 한인사회와 미국 정치인들 간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당시 제임스 한 LA 시장 길 가세티 LA 시 검사장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인 공직 진출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고 2000여 개의 임명직 주 공무원 중에서 최소 5퍼센트를 한인들로 임용하겠다는 약속을 그레이 데이비스 신임 주지사로부터 받아내기도 했다.

그동안 한인사회와 연결 고리가 없었던 미국 정치인들도 한인민주당협회를 다리 삼아 한인사회에 등장하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그들은 한인들의 모임에 나와 정치적 소신을 피력하거나 지지를 구하고 한인사회의 요구를 경청하기도 했다. 그러자 한인사회의 정치적 권익 신장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칭찬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한인 언론의 조명을 받는 일도 많아졌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한인사회의 정치 판도를 바꾸어놓고 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간 것만은 아니었다. 호사다마랄까 내가 민주당의 간판 인물처럼 한인 언론에 자주 등장하자 그동안 한인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미민주당협회 소속 1.5세 2세 후배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되었다. 기존의 민주당 조직이 있는데 왜 하나를 더 만들어 분열의 인상을 주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후배들을 설득했다. "한인민주당협회는 기존 조직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영어권의 한미민주당협회가 한인사회와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만든 것다. 언제든지 통합하고 함께 힘을 모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진심을 이해한 리처드 최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 두 단체의 통합을 협의하게 되었다. 우리는 곧 협상에 들어가 결론을 내렸다. 명칭은 내가 만든 단체의 이름을 포기하고 한미민주당협회로 하기로 하고 통합 대회를 갖기로 했다. 통합 대회에서 양쪽 인사들은 나를 새 회장으로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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