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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64] 98년 한인사회와 호흡하는 민주당 조직 결성···'한인민주당협회' 초대 회장으로 정치 입문

한인사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전에는 내가 한인사회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한인사회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장학재단 일을 계기로 서서히 나와 한인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임을 알아갔다.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알게 되었고 점점 네트워크가 넓어졌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나는 내가 두 번째 새로운 인생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인생의 길잡이는 바로 한인사회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고 동포사회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었다. 나를 포용해 주고 인정해 주는 한인사회에 대한 열정은 갈수록 뜨거워졌다. 나는 한인사회 안으로 더 깊숙이 몸을 담글 마음의 채비를 갖추었다.

민간 정치 운동가로서 첫발을 떼다

1998년 초 LA에서 고려대학교 해외 석탑제가 처음으로 열렸다. 나는 선배들의 요청으로 기획 준비를 맡아 행사에 필요한 프로그램과 물품들을 착착 준비했다. 김정배 총장과 많은 고대교우회 임원들이 참석한 해외 석탑제는 성공리에 끝났다. 나 역시 준비를 지휘한 사람으로서 보람이 컸다. 행사가 끝난 후 당시 동창회장을 맡고 있던 민영흡 선배가 나를 불렀다.

"몇 년 동안 자네를 유심히 봤는데 참 열심이더군. 봉사 정신도 투철하고 영어도 아주 잘하고 사람들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냐. 이번 행사가 아주 깔끔하게 끝난 것도 자네 공이 크네. 리더십도 대단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정치할 생각 없나? 정치 한번 해보지 그래."

그 선배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그런 선배가 미국 사회에서 경험한 것도 많고 정치적인 감각도 충분한 것 같으니 한번 나서보라고 나를 부추긴 것이다. 이미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던 나는 선배가 던진 '정치'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어떻게 하면 이 미약한 한인사회의 정치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까? 정치라는 미풍이 내 마음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맡은 한인사회 일은 한미장학재단 이사가 유일했다. 장학재단은 비영리.비정치 단체다. 장학 사업만 하는 순수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한인 커뮤니티의 권익이 걸린 각종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은 없었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한인들의 힘을 결집하려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다. 혼자서는 아무리 뛰어보았자 한인사회의 정치력 향상을 도모하기 어렵고 설사 한다 해도 별 효과는 없을 것 같았다. 조직을 통해야만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사회는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짙어 공화당 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공화당 쪽 지지자 모임인 한미공화당협회가 간간이 활동하고 있을 뿐 민주당 조직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민주당 출신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영어권 1.5세 2세들을 중심으로 한 한미민주당협회라는 조직이 있긴 했지만 1세 한국어권 중심인 한인사회와는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고 이렇다 할 활동도 없었다.

나는 뜻을 같이하는 한인 1세들을 중심으로 한인사회와 호흡을 함께하는 민주당 조직을 결성하기로 했다. 1998년 여름 '한인민주당협회'를 창립하고 내가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정치인 아닌 민간 정치 운동가의 길을 가기 위한 첫 단추를 꿴 것이.〈계속>

글.사진=올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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