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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 [강석희 어바인 시장 자서전 '유리천장 그 너머'-61] 한인업소에 약탈·방화 자행한 LA폭동은 나와 한인사회를 다시 보는 계기 만들어

내 눈을 뜨게 한 LA폭동

1992년은 내 인생의 큰 전환기가 된 해였다. 업계 정상에 오른 이후로 잠시 내리막길을 걷던 서킷시티는 재기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승진할 때가 지났는데도 내 위로 계속해서 백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오면서 이제 정든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여러모로 불투명하고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즈음 LA흑인폭동이 발생했다. 4월 29일 LA 남부 지역에서 시작된 폭동은 단숨에 전 방위로 퍼져 나가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폭도들은 LA를 무법천지로 만들었고 닥치는 대로 가게에 난입해 물건을 훔쳐 달아나고 불을 질렀다. 그들은 주로 리커 스토어술과 잡화를 파는 소매점와 마켓 같은 곳을 집중적으로 약탈했는데 절반 이상이 한인이 운영하는 업소였다.

한인 라디오방송 '라디오코리아'는 피해를 당한 한인 업주들의 절규를 하루 종일 생방송으로 전했다. TV에서는 불에 타서 재만 남은 생계의 터전에서 넋을 놓고 울부짖는 여성을 종일 보여주었다. 급기야 한인 대학생이 폭도의 총에 맞아 숨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어딜 가든 안전하다고 마음 놓을 곳이 없었다. LA 남부 지역뿐 아니라 곳곳에서 충동적인 약탈과 방화가 잇따랐다. 한인 업소들이 밀집해 있는 LA 코리아타운에서는 업주와 종업원들이 총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 대치하는 그야말로 전쟁터와 다름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었다. 폭동이 발생하기 얼마 전쯤 어느 한인동포가 운영하는 리커 스토어에서 흑인 여학생이 오렌지 주스를 훔쳐 달아나다 여주인의 제지를 받는 과정에서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여학생이 휘두르는 폭력에 여주인이 총으로 대응하다 벌어진 사고였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흑인사회가 동요했다. 한인들이 흑인을 차별하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며 이를 인종갈등으로 몰아가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한인 업주들은 물론 한인사회 전체가 흑인들의 보복이 있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보호받지 못한 한인사회

이런 와중에 폭동이 일어나자 한인들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폭도들이 한인 점포를 의도적으로 약탈하고 경찰은 방관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흑인들이 그동안 한인 업주들에게 쌓아둔 나쁜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이 폭동을 한인과 흑인 또는 한인과 라티노 이민자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하여 수수방관하며 백인들만 보호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서킷시티에 근무하면서 신발 가게 3곳을 운영하고 있던 나는 LA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TV와 라디오를 켜놓고 초조한 심정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700여 개의 한인 업소가 불에 타고 피땀 흘려 모은 동포들의 재산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참상을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LA폭동은 회사에서 유리천장의 한계에 부딪혀 진로를 고민하던 나에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표본이자 축복의 땅이라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렇듯 비민주적이고 야만적인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가 내가 너무 개인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인동포들은 절규하고 있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한참 동안 미적거려 왔던 사표를 당장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에 온 뒤로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정작 동포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LA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사회는 나와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이었다.

한인 타운도 가끔 친구를 만날 목적으로 잠깐씩 찾았을 뿐 나는 여전히 미국 회사에서 타 인종을 상대로 장사하는 한인사회의 이방인일 뿐이었다.

내가 한인들과 교류하는 곳이라곤 교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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