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힘들지만 훈훈한 연말] '선한 사마리아인 봉사회' 이순재 회장
연 3만불 사재 털어 18년 외길 '사랑나눔'
"나눠주는 만큼 채워주더군요…"
매일 저녁 어스름하게 어둠이 내릴때면 챙이 있는 모자를 푹 눌러쓴 어수룩한 할아버지가 양손에 상자를 들고 들어선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탁자위에 놓여 있는 도넛을 상자에 넣고 다시 가게문을 나선다. 이순재(75) 할아버지다.
“한 2년 6개월 됐어요. 푸드 뱅크를 통해 이 빵집과 인연을 맺게 됐지요. 팔다 남은 도넛을 가져다 다음날 아침 가게에서 흑인 주민들에게 나눠줍니다. 주민들이 너무 좋아해요.”
도넛 봉사는 월요일을 제외한 1년 365일 계속된다. 적게는 50개에서 많게는 하루 100개가 넘을 때도 있다.
볼티모어 다운타운에서 조그만 그로서리를 운영하는 이순재 할아버지에게 있어 가게는 바로 나눔의 현장이다. 도넛을 나눠주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가게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상당부분을 흑인사회에 또는 한인사회에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지난 1974년 도미한 그는 77년부터 ‘리 푸드 마켓’이라는 그로서리를 시작, 나눔운동을 시작했다. 불록 파티를 비롯 크리스마스 파티 등을 열며 이웃들의 친구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사랑을 실천했다. 워싱턴-볼티모어 일원 각 교회들이 한글학교를 운영하기 이전 볼티모어 한국학교를 13년간 재정을 후원하기도 했다.
그에게 봉사활동의 전환점이 된 것은 지난 1992년. 지인 2명과 함께 비영리단체인 ‘선한 사마리아인 봉사회’를 조직, 본격적인 자선사업에 나섰다. 당시 2만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 요리가 가능한 트럭을 구입, 직접 빵, 우유, 과자, 캔디, 시리얼 등 200여명분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11년전에는 메릴랜드 푸드 뱅크의 멤버로 가입, 더 많은 음식을 흑인들과 나눴다. 선한 사마리아인 봉사회는 외부에 재정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손을 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당시 이북 출신자들로 구성된 8240 출신인 그는 현재 받는 연금과 사회보장연금, 여기에 가게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재정을 충당한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후원도 큰 몫을 담당한다. 가족들이 매월 600달러를 보탠다. 이렇게 해서 선한 사마리안 봉사회가 연간 봉사활동에 쓰는 비용만도 무려 3만달러. 물론 고스란히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금액이다.
“흑인 커뮤니티에 1만달러 정도가 쓰이고 한인 사회나 교회에는 쌀을 전달합니다. 매년 800포~1000포(20파운드) 정도가 나간다고 생각하면됩니다.”
재정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나누는 만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선행이 계속되면서 지인들의 따뜻한 손길도 이어진다. 뉴저지 의류 제조 판매업체인 K.S. Trading의 강신억 사장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의류를 제공한다. 이 회장은 이 옷들을 흑인들을 비롯 중국 선교 또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3년전 중국선교를 앞두고 또다른 삶을 경험한 그다.
“선교는 가야겠는데 병원에서 전립선암이라고 합디다. 기도중에 수술보다는 중국을 먼저갔지요. 이후 돌아와서 수술준비까지 다 마쳤는데 어느날 기도로 기적적으로 완치가 됐어요. 병원에서는 이상하다고 해 검사를 받았는데 암세포가 정말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은퇴를 생각하던 그였기에 이같은 기적은 그를 더욱 봉사현장으로 이끌었다. “봉사한다고 하면 보통 3년을 넘지 못합니다.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생각을 하니 더 신이납니다. 난 단지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줄 뿐이지요.”
‘아프지 않은것 자체가 은혜’라는 그, “건강이 허락할때까지 봉사는 계속하겠지만 ‘선한 사마리아인 봉사회’는 조만간 아들(이상진)이 이어갈 것”이라고 이 회장은 말했다.
사랑나눔이 대를 이어가는 순간이다.
허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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