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거주 75세 독거노인 정순임씨, 가장 힘든 건 '외로움'···종일 말 한마디 못해봐
200달러가 한달 생활비 전부
노인대학 출석이 '유일한 낙'
정순임 할머니의 LA 정착은 하루하루 말 그대로 힘겨운 싸움이다. 할머니의 한 달 생활비는 200달러. 미국에 산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할머니는 영주권자로 아직 정부 보조를 받지 못한다. 그저 자녀들이 주는 200달러가 한달 생활비의 전부다.
아직 경제적 여건이 안되지만 지난 6월 정 할머니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딸의 곁을 떠나 LA로 이사왔다. LA에 가면 비슷한 연령대의 노인들이 모여 살고 있어 적적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LA에서 할머니가 머무는 곳은 한인타운 변두리의 작은 스튜디오식 시민 아파트. 그나마 소득이 없어 100달러를 안내는 작은 시민 아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 할머니의 LA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한인들과 부대끼며 살고 싶어 이사왔지만 막상 아파트를 얻은 곳은 히스패닉들이 밀집해 사는 곳. 이웃에 한인들이 몇몇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얼굴 한 번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운전도 못하니 마켓에 한 번 가려면 지인의 도움을 받거나 무거운 비닐 꾸러미를 들고 버스를 타야 한다.
겨우 마켓에 가도 할머니의 장바구니 안에는 싸게 살 수 있는 야채류가 전부있다. 고기나 생선은 한 번 사는 것도 쉽지 않다.
"한 번은 LA오자마자 너무 더워서 며칠 몸져 누웠었어. 아파도 누구 한 명 와서 봐줄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 혼자서 며칠을 끙끙 앓고 일어나 보니 냉장고가 텅 비었더라구. 그래서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지. 장을 한 번 봐 달라구. 바쁜 거 아는데 방도가 있어야지."
사실 할머니의 아들은 LA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하지만 늦게 이민온 아들네 가족은 아직 정착을 하지 못해 도와주기가 힘들다고 할머니는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어려움보다 정 할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집에 있으면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 할 때도 많아. 아무 말도 안하고 하루 종일 있다보면 입에서 냄새가 나."
그런 외로움에서 벗어나 보려고 일주일에 몇 번 안되는 외출을 하는 곳이 바로 한인교회가 운영하는 노인대학이다.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서 내야하지만 주일예배를 제외하고 또래 친구들과 웃고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 즐거움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 할머니에게 미국 정착은 아직도 멀고 먼 일이다.
앞으로 시민권을 따려면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시민권 시험을 보는 것도 할머니에게는 두려움이다.
"낼 모레면 80인데 영어로 시민권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 걱정이지. 미리 공부해볼까 생각하다가도 그때 다 까먹을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의 한숨이 깊기만 하다.
요즘 할머니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해본다. 70평생 살았던 고국으로 돌아가면 말이 통하니 어떻게든 못살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미국으로 올 때 친구들이 호강해서 좋겠다며 부러워 했는데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지. 그리고 막상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생활비도 만만치 않고 LA 날씨가 워낙 따뜻하고 좋으니 떠나기가 쉽지만은 않아."
큰 결심하고 왔는데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힘든 점 한가지를 얘기한다. 사람들의 시선이다.
"여기 와서 여러 명의 도움을 받으면서 들은 말이 있어. '자립정신을 갖고 독립을 해야한다'는 말이야. 근데 그게 쉽지가 않잖아. 70평생을 쌀 밥만 먹던 사람이 갑자기 보리밥 한 그릇을 먹으라 하면 어떡하나.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조금씩 맞춰가야지. 그런데 다 내 힘으로 해 보라네. 그럴 때면 더 힘이 들어."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면 거기 또 다른 정 할머니가 있을 것만 같다.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있어도 말할 사람이 없어서 침묵으로 하루를 보내는. 걸을 수 있는데 갈 곳이 없어 우두커니 하루를 보내는.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오늘은 아이들이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글.사진 오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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