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영목의 테마가 있는 유럽 여행-7] 제노아 쇼핑가 점령한 중국 상점들의 파워
유럽에 부는 중국 바람 3년전 왔을때와는 딴판…새로운 실크로드 예감이
아침에 나는 선박회사가 마련한 버스를 이용해 로마에 가기로 했다. 선박회사 버스를 이용하면 교통체증, 사고 등으로 제 시간에 배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너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대신 한 군데라도 차분하게 감상하기로 했다. 그래서 바티칸 궁에서 가까운 산타 젤로라는 박물관을 목적지로 정했다.
나는 거기서 정말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박물관 하나만 제대로 보려 해도 몇일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박물관에는 정말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찬송가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성서 글귀에 음표가 붙은 것 같은 성경 인쇄물이 있는가 하면 세잔느, 르노와르, 보디첼리 같은 화가들의 작품이 가득 찬 방도 있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군인들의 복식을 전시한 방도 있었다.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았고 본 것을 다 기억할 수 없는 게 정말 아쉬웠다.
오후에는 패션 거리를 구경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창 밖의 멋진 부티크 스토어를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가게가 눈에 띄면 버스에서 내렸다.
그러나 버스에서 본 가게는 찾지 못하고 다리품만 꽤나 팔았다. 결국 지친 몸에 시간도 없고 해서 쇼윈도로 대충대충 값비싼 물건들을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슬쩍 슬쩍 보기에도 값은 꽤 비쌌다. 신사용 구두가 800유로(1200달러), 핸드백이 500유로(750달러) 정도였다. 아무리 첨단 유행을 걷는 상품이라 해도 과한 듯 했다. 달러가 힘이 없는 것도 이유였지만 아무튼 살 엄두도 못낼 금액이었다.
로마 시내 구경을 마치고 크루즈로 돌아와 잠을 잔 뒤 다음날 아침 깨어보니 배는 어느덧 제노아 항에 닿아 있었다. 14층(deck) 식당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쇼핑백을 든 젊은이들이 줄을 지어 배로 돌아오고 있었다. 때마침 언제 나타났는지 나의 저녁 만찬 식구가 된 폴 리(Paul Lee)가 옆에 다가와 한마디 아는 체 한다.
“저기 지금 오는 사람들이 우리 크루즈 승무원들입니다. 그들이 여기에서 물건을 산다는 것은 이곳의 물건값이 제일 싸다는 증거죠. 내 친구 이야기로는 이 제노아가 이태리에서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고, 이태리로 들어오는 수입품은 모두 이 항구를 통해 반입된다고 합니다. 수입품의 대부분은 중국산이랍니다.”
나는 제노아에도 볼거리가 많다고 들었지만 여기서 만큼은 쇼핑과 시내 구경으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폴 리와 함께 제노아 시내로 걸어 들어갔다.
부두를 떠나 큰 빌딩들이 늘어선 거리에 들어서자 나는 그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리 상점들 거의가 중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의류, 가죽제품, 전자제품, 신발, 잡화 완구 등등 수입상이었다. 심지어 상하이 수입(Shanghai Import) 등 한자로 상호를 쓴 간판도 즐비했다.
타이슨스 코너 메이시 백화점에서 120달러 정도에 파는 핸드백을 폴 리가 중국상점 주인과 중국어로 흥정을 해서 14유로(약 20달러)에 사오자 아내는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 제노아의 중국상가를 보다 문득 어제 저녁 식사 때 폴 리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제 중국은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생각이 교차했다. 사실 내가 유럽을 마지막으로 찾았던 것은 3년 전이었다. 당시 유로화 대 달러화 환율은 1유로당 1.2달러였다. 달러 가치가 조금 떨어졌다 해도 그런대로 달러가 대접을 받았고, 중국의 진출은 미미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번 유럽 여행은 그 때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1유로당 1.5달러로 달러가치가 25%나 떨어졌고 유럽에서 중국은 자본과 상품 공급 국가로서 절대적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파리에서 만났던 한 연변 여인은 느닷없이 백화점, 선물가게에 불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중국 손님(관광객)들이 몰려와서 싹쓸이를 하는 바람에 손님들 안내와 돈 세는 일손이 모자라 불려간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상징인 ‘루이비통’도 이제 중국에서 만든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고 이태리에서 팔리는 공산품 역시 대부분 중국산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 튀니시아에서의 해프닝이 다시 기억났다. 튀니시아 수도 튀니스 거리를 걷는데, 웬 소녀가 다가와 “니 하오(안녕하세요)”라고 하는게 아닌가.
내가 “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라고 했더니 엉터리 영어로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그랬다. 나는 유태계의 튀니시아인이다” 라며 낄낄거리고 뛰어갔다.
아프리카 튀니시아의 여학생도 중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21세기는 중국의 시대라는 말이 새삼 피부에 와 닿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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