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교감과 소통
“아빠, Coldplay가 오는데 보러 가도 될까요?”“보러 가도 되냐는 거니, 아니면 가고 싶다는 거니?”
아들이 콘서트를 보러 가고 싶다고 하는데, 가수의 이름을 듣고도 그 가수가 누군지 즉시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래도 모르는 척은 안하면서 표를 구입하게 했는데, 아들은 내가 그 가수를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재빨리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과연 나도 아는 노래를 부른 그룹이었다. Coldplay는 아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Viva La Vida’를 부른 영국 록그룹이다. 그들은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많은 노래를 히트시켰다. 아들이 샤워하면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 그들의 노래이다.
아들의 전화기에 가장 많이 저장되어 자주 아들이 듣는 음악들이 그들의 것이다. 방송에서도 그들의 음악이 온통 도배되었다 싶은 정도로 흘러나왔는데, 나는 왜 그 이름을 그 때 몰랐을까? 나는 아들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콘서트 열리는 공연장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것으로는 아들과의 교감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늦은 밤. 공부하고 있는 아들 방에 들어간다. 아들의 재산 목록2호인 기타를 들어 조용히 친다. (아들의 재산 목록 1호는 랩탑 컴퓨터이다.) 나는 아들도 아는 노래, 나도 아는 노래를 허밍으로 한다. 그러면 아들은 잠시 공부를 멈추고, 내가 치는 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한다. 미국에서 자란 아들이 부르는 미국 노래의 발음이 좋은 것은 당연한데도, 새삼 매끄럽게 노래하는 아들이 신기할 때가 있다. 함께 노래하다가 화음이 잘 맞으면 아들과 나는 미소를 나눈다. 교감이 되고 소통이 되는 순간이다. 말이 필요없다.
아침에 아들이 늦게 일어나도 마음 약한 아내는 호되게 질책을 하지 않는다. 새벽까지 공부하고 겨우 일어나는 아들에게 먹을 것 챙기는 것이 우선이다. 차에서 먹으라고 밥과 국을 싸준다. 이러나 저러나 학교는 가는 것인데, 왜 조금 더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지 나는 슬슬 화가 난다.
운전을 하면서 아무 말도 안한다. 아들은 엄마가 싸준 밥을 맛있게도 먹는다. 아빠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들은 전혀 모른다. 시금치국을 후루룩 마시고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잔다. 참 태평하다. 나는 신호등마다 시계를 보면서 아들이 지각을 할까 걱정을 하는데, 아들은 정말 잘도 잔다. 나 혼자 마음을 졸인다. 교감 제로이다.
주말이 되어 아들과 쇼핑몰에 간다. 이뻐 보이는 십대 여자 아이들이 지나갈 때, 내가 말한다.
“저기 빨간 옷 입은 아이 이쁘지 않니?”
“아빠는 차-암.”
아들이 한숨을 쉰다. 아들이 보기에는 전혀 안이쁜 여자 아이들을 나는 이쁘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는 그리 놀랍지 않은 아이들을 보고 아들은 이쁘다고 말한다. 내 눈에 이쁜 며느리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교감이 잘 안된다.
내가 중학생 때, 아버지께서는 가끔 내가 듣는 음악을 궁금해 하셨다. FM 라디오를 늘 옆에 두고 살았던 나에게 아버지께서 노래 제목이나 가수 이름을 물어오시면, 나는 칭찬을 받은 것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다. ‘아, 아버지께서도 내가 듣는 음악을 좋아하시는구나.’ 나는 아버지께서 그 당시 세계적으로 인기있던 그룹 ABBA의 음악을 나와 들으시면서 멤버들의 이름을 묻거나 노래 제목을 물으실 때마다 아버지와의 끈을 확인한 것 같았다.
일본 영화 잡지 ‘스크린’ 과월호를 구해서 그 시절 나의 우상 스티브 매퀸의 사진을 보고 있을 때면, 아버지께서도 ‘빠삐용’을 전에 보셨다면서 대화를 하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공부 외에는 내가 모든 것을 멀리하기를 바라실 줄 알았는데, 그렇게 나의 관심사를 인정하시고 이야기하시는 것이 정말 좋았다.
아버지께서 6.25전에 배우셨다는 기타를 내 앞에서 치시던 날, 나는 새로운 나의 아버지를 만났다. 강직하시고, 원칙만 아시던 공직자였던 나의 아버지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십대 아들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셨다. 나는 아버지도 나와 같은 시기를 지냈음을 그 때 느꼈다. 아버지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들이 성장하면 아들과 더 말이 잘 통할 줄 알았다. 아들과 무언가를 더 하면서 더 교감하고 소통할 줄 알았다. 그러나 쉽지 않다. 세대 차이를 인정해도, 아들이 커갈수록 나의 기대가 커지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들의 사고 방식이 나보다 미국화가 된 탓인지 모르겠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동네 극장에서 상영되던 날, 우리 가족은 극장에 갔었다.
아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면서 소통하고 싶었고, 한국적인 무엇인가를 가지고 교감하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났을 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는 즐겼으나, 많은 대화를 하면서 교감을 하지는 못했다. 소통은 나만의 욕심이었다. 내가 듣고 웃는 이야기에 아들이 같이 웃고, 슬픈 영화를 보면서 함께 울기를 원하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욕심’일까? 나는 아들과 더 소통하고 싶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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