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유럽여행-8] 내가 여행한 5개나라 '한 가족같은 느낌'
각기 다른 말을 쓰지만 유로화 하나로 통용되고 서로 잘 어울려 살아
종교 문화적 동질감, 그 중심에는 로마가…
추운 겨울이 없고, 일년 내내 햇볕이 내리쬐는 곳으로 세잔느, 바로크, 마르체 등 유명 화가들이 활동한 도시다. 박물관, 극장, 오페라 극장도 많은 고장이다. 하지만 내 주된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산 정상에 있는 노트르담 데 가르데(수호의 성모마리아)성당을 둘러보고 시내를 좀 거닐어 보자고 마음 먹었다.
프랑스어로 노트르담은 ‘고귀한 여인’, 즉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프랑스 곳곳에 ‘노트르담’이 있는데 파리 노트르담 사원의 정식 명칭은 ‘파리의 노트르담’이며 마르세유에 있는 것은 ‘수호의 노트르담’이다. 나는 미니 관광버스를 타고 산 정상을 찾았다. 아름다운 해안선, 그리고 알렉산드로 뒤마의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의 실제 모델이 되었다는 외딴 섬 ‘이프’에 세워진 감옥, 그리고 산 정상에 건축된 거대한 성당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오후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노천 카페에서 와인 한 잔을 3유로(약 $4.50)에 사서 마시며 망중한의 시간을 즐겼다. 무료로 따라나오는 맛있는 올리브 짠지와 함께 마시는 와인 맛은 정말 별미였다.
마르세유의 일요일은 조용했다. 모든 상가, 심지어 백화점까지 문을 닫았고, 오직 관광지역과 동네 카페와 식당만 문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지금까지 바르셀로나, 튀니시아, 말타, 시실리, 로마, 제노아, 마르세유 등 다섯 나라 8개 도시를 방문했다. 그런데 5개 국가 모두 같은 시간대일 뿐 아니라 화폐 또한 유로화 하나로 해결됐다. 비록 다섯 나라가 각각 자기 나라 말을 쓰고 있지만 세계는 이미 지구촌 가족으로 어울려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는 유럽인들이 이렇게 뭉칠 수 있는 원동력은 ‘축구’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물론 축구도 한몫 했겠지만 그보다 먼저 ‘로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마를 기반으로 유럽의 종교·문화적 동질감이 형성됐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나’라는 한국계 미국인을 생각해 본다. 처음 크루즈선에 탔을 때는, 나 스스로 어색했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이 어색함은 언어 때문에 시작된 것 같다. 안내 방송은 이태리어로 시작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 순서로 나왔다. 저녁마다 3000석 규모 극장에서 마술, 노래, 춤, 무용 등 공연이 있는데 극장 진행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5개 국어였고, 그 순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만찬 때엔 더 당혹스러운 일도 있었다. 스니커 신발에 캐주얼을 입고 갔더니 모두가 웬 무뢰한이 왔나 하며 쳐다보는 듯했다. 다른 승객들은 정말 ‘선데이 베스트 드레서’랄까 정장을 입고 와서,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나는 탄식조로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아하, 미국이 세계에서 우뚝 선 것으로 생각했고, 또 미국식 생활 방식이 제일인 줄 알고 30년을 살아왔어. 그러나 이제 생각을 바꿔야 겠다. 미국도 이제 세계 가족의 하나일 뿐, 아니 잘 해야 큰 형님 정도라는 걸 깨달았어. 이제 예의를 지키고, 겸손을 배우고, 어울려 사는 것을 익혀야겠다.”
그 순간 우리와 친구가 된 중국인 폴 리 부부가 아내와 함께 무엇이 즐거운지 낄낄거리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폴 리를 보면서 어느덧 나는 다시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그래, 과거의 역사가 어떻든 또 땅덩어리나 인구면에서 당신네 중국보다야 작지만 한국은 대단한 나라야. 당신들이 그리 열광하고 즐기는 김치, 라면, TV 연속 드라마를 만드는 나라, 이 크루즈 배에 걸려 있는 3000대 정도의 삼성 TV를 만드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지. 그리고 아직 숫자는 미미해도 이곳 불란서, 이태리에서 볼 수 있는 현대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야. 아마도 다음번엔 한국 조선소에서 만든 크루즈를 타게 될 걸…”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며, 미래를 꿈꾸는 행복한 나라 사람들이야. 그리고 어쩌면 타민족을 제일 많이 끌어들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결혼도 제일 많이 하고, 미래 가장 많은 지구촌 식구를 껴안고 사는 나라가 될 거야….”
진정 이번 여행은 나로 하여금 세계 모든 나라 사람을 지구촌 한 식구로 받아들이게 한 소중한 기회였다. 동시에 내 시야와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보람된 시간였다. 크루즈여행을 통해 앞으로 남은 여생동안 국적ㆍ인종을 불문하고 지구촌 모든 사람과 웃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