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유럽여행-6] 지극히 평화스러운 '대부의 고장' 시실리
와인과 볼거리 많음 섬…기후 탓에 에어컨 없고 수퍼마켓 없어 '이색적'
100여년 영국 식민지…말타섬의 역사도 눈길
‘말타’라는 이름은 페니키아어로 ‘안전한 쉼터’또는‘피난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곳 사람들의 혈통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 그들은 자기들만의 말타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근래 100년 넘게 영국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는 지역이다. 미국에서 간 내 입장에서는 아주 편했다. 또 관광객을 위해 무대 세트처럼 잘 정돈된 고풍스러운 구시가지, 공원같이 잘 가꿔진 환경, 관광기념상품, 특히 유리세공 등이 오밀조밀한 재미를 제공한다.
말타의 정복 역사는 꽤나 복잡하다. 페니키아, 카르타고, 로마, 비잔틴, 튀니시아에 근거를 둔 아랍, 노르만공, 아라곤, 오토만 제국, 프랑스, 영국 등이 얽히고 설켜 있다.
그중에서도 십자군과 관련된 사건이 흥미롭다. 예루살렘 성지 회복을 기치를 내세운 십자군의 전진 기지는 원래 그리스 남단 로데스섬(Rhodes Island)에 있었다. 그러나 오토만제국의 세력확장으로 원래 그곳에 있었던 전진기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명으로 말타섬으로 옮겨왔다. 그리하여 말타에 영국 기사단, 프랑스 기사단, 이태리 기사단 등 여러 유럽 나라 기사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되면서 말타의 인종적 뿌리가 복잡해졌다.
또한 오토만 투르크 이슬람 교도들의 침략에 맞서 유럽 기사단이 연합해 방어하다가 거의 절망적인 순간에 시실리 성주의 구원으로 살아남았던 절박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대로 재미있는 말타 관광을 마치고 배로 돌아와 내일 도착할 시실리에 관한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2000년 전 포에니전쟁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40여년 전 책과 영화로 나를 매료시켰던 갓파더(대부)에서 느꼈던 시실리인들의 모습을 대할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어저께 그 작은 말타 섬에서 버스 타면 될 것을, 네 명이 1인당 13유로(약 20달러)씩 내고 왜 택시를 대절했느냐는 말을 들었는지라, 오늘은 우리 유람선이 정박한 메시나항에서 약 50마일 떨어진 로마 유적지 타오르미나(TAORMINA)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두 소녀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그만 시실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두 소녀의 미소 속에 곱게 자란 친절함과 순수하고, 고운 마음을 발견했다. 영화 갓파더에서 후덕하게 보였던 여주인공의 딸같은 소녀들이었다. 이들 소녀의 미소가 나로 하여금 시실리를 마냥 좋아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비록 유로화로 50전짜리 버스표였지만 지갑에서 꺼내 주면서 갈아타는 곳을 실수할까봐 손짓 몸짓으로 알려주고 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어 환송해 준 소녀들이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시외버스로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서는 곳이 너무 많고 느리다는 것을 알고서, 결국 나와 같은 생각으로 버스 정류장에 나온 독일인 크루즈 승객들과 함께 결국은 택시를 대절해 타오르미나로 갔다. 나중에 생각하니 잘한 결정이었다.
타오르미나에서 시실리 관광책을 한 권 샀다. 모두 124페이지, 그중 오늘 방문한 타오르미나와 메시나를 소개하는 내용만 모두 8페이지였다. 다시 말해 내가 가볼 엄두도 못낸 15배나 되는 안내책자의 나머지 섬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는 계산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와서 시실리의 모든 것을 두루 살피리라는 욕심이 솟구쳤다. 내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는 시실리의 매력 두가지와 와인 때문이기도 하다.
그 두 가지가 무얼까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사실을 말해야겠다. 이곳 시실리에는 100% 장담하지만 에어컨이 없다. 하기야 추우면 두꺼운 옷, 더우면 얇은 옷이야 입겠지만 좌우간 온도, 습도, 햇살이 에어컨이 필요없게 만든다.
그리고 나를 황홀하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시실리에는 수퍼마켓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혼자만의 상상의 그림을 그려보자.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무렵이 그림의 시간적 배경이 된다. “오늘 저녁은 문어 샐러드에 스테이크 한 조각, 그리고 디저트로 사과가 어떨까” 궁리하면서 생선가게에 들러 문어 한 마리, 푸줏간에서 안심 반 파운드, 야채가게에서 사과 한 개와 양상치 한 다발 등등을 사서 집으로 걸어가면서 집에서 담근 포도주의 맛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는 그림 말이다.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이같은 그림으로 미뤄볼 때 시실리는 마피아의 본향이 아니라 평화와 조용함이 넘치는 그림 같은 정원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타오르미나 관광을 마치고 배로 돌아온 그날 밤 침대에서 행복했던 하루를 회상하면서 영화 갓파더의 주제곡 후렴 가사를 속으로 불러봤다.
“Wine colored days warmed by the sun, deep velvet nights when we are one.”
“밝은 한낮의 포도주빛 시간들은 저 하늘의 태양빛에 익어가고, 짙은 벨벳 빛깔의 밤이 되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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