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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유럽여행-4] 시 전체가 가우디의 혼이 깃든 '건축예술품'

바르셀로나 플라맹고는 빠르고 경쾌함이 특징
유럽축구 직접 보러 왔다는 한국 학생과 얘기하다 보니
'제2 제3 김연아' 기대감이…

비행기 스케줄을 보니 불란서 파리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 식사제공이 된다고 적혀 있었다.

두 도시간 시차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비행시간은 그래도 최소한 2시간 30분은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행기 이륙 후 스낵 같은 것을 나눠줘 먹고 나니 어느새 비행기는 하강하고 있었다. 참으로 가까운 거리였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리니 현지 언어인 카달루나어, 스페인어, 영어로 된 출구 표시가 눈에 띄었다. 바르셀로나는 공업이 발달한 항구도시로 분명 스페인 제2의 도시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이상하게도 바로셀로나 주민들만의 말과 글이 있고 게다가 그것을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어는 학교에서 일주일에 2시간씩만 배운다고 하니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이유에서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무척 보수적 기질의 소유자가 아니냐고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1800년대 초 도시 성곽과 성당 등을 많이 허물면서 유럽에서 가장 먼저 과감하게 도시 정비사업을 시작한 게 바르셀로나라고 한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하면 떠오르는 세계적 건축설계가‘가우디’가 있다. 그는 도시 곳곳에 그의 작품인 건축물을 지어 도시를 하나의 건축물 작품 전시장처럼 꾸며 놓았다.

계획 도시인 만큼 직선 거리를 만들면서도 그 속에서 물결 같은 곡선의 건물, 그리고 보행자를 위한 포장도로까지 곡선 무늬로 꾸몄다. 공원 속 나무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람브라스 거리의 밤거리는 낙천적 사람들로 연일 붐볐다.

나는 유명한 스페인 요리 빠에야를 먹기 위해 꼬딕 지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세기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식당에 들어갔다. 빠에야는 야채와 육류, 해산물을 넣어 국물을 만들고 그것에 쌀을 넣어 밥을 볶아 내는 특이한 음식이었다. 빠에야에 포도주를 한 잔 곁들인 저녁을 마치고 나오자 이미 야시장이 서 있었다. 야시장에는 치즈, 와인부터 그림(유화)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물건들이 많았다.

다음날 관광을 하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우선 콜럼부스 기념관 앞 선착장이었다. 수많은 배들이 멈추고 떠나는 선착장의 바닷물이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다. 팔뚝 만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고 노는데 누구 하나 낚시질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평화롭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시키지 못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품들 역시 장관이었다.

그리고 꼬딕 성당 앞에서 벌어진 축제(?)도 인상적인 구경거리였다. 꼬딕 성당의 노바 광장에 도착하니 음악 연주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성당 앞 계단에 20여 명이 모여 금관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꼭 모닥불 주위에 모인 것처럼 갖고 있던 소지품들을 가운데 놓고 손에 손을 잡고 원을 만들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싸르디나’춤이라고 하는 ‘카다루나’의 민속춤이었다. 그들은 그 춤을 추기 위해 어느새 가벼운 흰 운동화처럼 생긴 신발을 신고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즐거운 게 아니라 숙연하고 엄숙해 보였다.

그들의 춤에 무언가 내가 알 수 없는 역사, 또는 전통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그날 밤 나를 아주 기분 좋게 만든 젊은 친구를 만났다. 아이터(AITOR)라는 작은 플라맹고 댄스 무대가 있는 식당에서였다. 스페인 남부 세르비아 지방의 애절한 가사가 담긴 춤과는 달리, 이곳 바르셀로나 플라맹고는 경쾌하며 빠른 게 특징이었다.

식사를 하며 플라맹고를 구경하는 데 관광 안내를 하며 여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젊은 학생을 데리고 와 내 옆에 앉았다.

그 젊은 친구는 테이블에 앉으며 “밀양 박씨입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참 별나고 싱거운 녀석이네”하고 생각했지만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그 청년으로부터 아주 신선한 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밀양 박씨라는 청년은 자신을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모 한의과대학 3학년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하니 최소한 앞으로 10년 동안은 공부하느라 고생만 할 뿐 외국에 나갈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에게는 친구와 지리산에 놀러간 것 쯤으로 알리고 몰래 돈을 마련해 (아마도 크레딧 카드를 개설했는지), 가장 값이 싼 터키 에어라인의 65만원짜리 비행기표를 사서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부모님께 타낸 돈은 10년 후쯤 갚아 드릴 요량이라고 했다.

젊은이에게 하필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그는 바르셀로나 축구팀의 경기를 한 번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어제 바르셀로나가 마르오카를 3대 1로 이기는 경기를 구경했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메소포타미아’출토품을 둘러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20대 때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한 축구팀 경기를 직접 보려고 이곳까지 왔다는 그 엉뚱한 발상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런 게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고 바로 그 엉뚱하고 무모한 도전을 바탕으로 김연아, 박태환, 신지애, 이효리, 비 같은 젊은이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밝은 앞날을 보는 것 같아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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