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유럽여행-3] 아! 자유분방한 예술인들의 성지 '몽 마르트'
상점·카페·카바레·극장,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곳…원래는 '순교의 언덕' 지칭
왠지 활기없는듯한 거리,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뉴올리언스가 떠올라
몽 마르트 언덕에는 볼거리가 꽤 많다. 에밀 졸라, 알렉산더 두마(2세), 하인리, 하이네와 같은 작가들, 또 베를리오즈, 오펜 바하 등 작곡가, 그리고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알프시네 프레시스 같은 사람에서부터 가수, 무용가까지 총망라한 예술인들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는 몽 마르트 묘지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언덕에서 시작해 언덕 맨 밑자락에 있는 물랑루즈 극장(1889년 건립. 캉캉춤의 시발지)에 도달하기까지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고 상점, 카페, 카바레, 극장들도 쭉 늘어서 있다.
언덕을 얼마 올라가니 화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좀 초라하고, 활기가 없어 보였다. 왠지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가 떠오른다. 30여 년 전 재즈공연과 길거리 화가들로 낭만적 분위기를 풍기던 뉴올리언스를 찾았던 적이 있다. 당시 푸짐한 해산물에 버번 칵테일을 꽤나 마셔 가며 술집여자와 노닥거리던 기분을 잊지 못해 허리케인이 몰아치는 해 봄철 그곳을 찾았다가 완전히 변해 버린 아니, 낭만의 폐허가 된 그곳에서 맛봤던 씁쓸한 기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몽 마르트 언덕 또한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걱정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기념품 상점, 카페, 동전 몇 푼을 바라며 길가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걸인 같은 연주자, 그리고 내 안목으로도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몇백 유로씩 하는 가격표가 붙은 상점의 그림들….
더구나 이제는 화가들도 별로 없고 돈 받고 만화식 인물 스케치(CARTOWN)하는 사람들만 나온다는데,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그나마 인물 스케치 그려주는 사람들도 없다고 한다.
실망스런 마음으로 몽 마르트 언덕을 내려가면서 혼자 생각했다. 이제 낭만의 몽 마르트 언덕이 아니라 파리가 직면한, 아니 전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몽 마르트 산자락의 이야기를 소설로 펼쳐보는 게 이 시대의 요청이 아닌가 말이다.
몽 마르트란 ‘순교의 언덕’이란 뜻을 갖고 있다. 3세기 초 기독교가 승인되기 전 생 드니(ST. DENIS) 주교가 순교한 장소다. 그리고 예전 파리로 들어가는 개선문 모양의 아치형 문이 12개가 있었는데 이 몽 마르트 언덕 아래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 그중의 하나인 생 드니 문이 있다.
이 생 드니 문이 있는 몽 마르트 산자루의 분위기야말로 참으로 파리의 현주소를 대변해 주고 있다. 동쪽에는 대부분 불란서 식민지 출신의 불어를 쓰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합법, 불법으로 거주한다. 최근에는 그 인구가 늘어나 이곳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아랍계통 사람들을 위한 상가가 길게 펼쳐져 있다. 놀랍게도 불란서 거주자의 17%는 아랍계통이라고 한다. 처음 파리시를 지을 때 건축 기능공으로 그들을 데려왔으며 이후 알제리, 모로코 등지의 식민지로부터 많은 아랍계가 불란서로 이민온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남쪽으로 세느강에 이르기까지에는 값이 좀 싸지만 아주 유행에 민감한 부티크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젊은 여인들 틈에 꽤나 많은 창녀들이 섞여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늙고 별볼일 없는 창녀들은 파리장들이고, 젊고 예쁜 창녀들은 주로 루마니아, 항가리, 폴란드 등등 동유럽 출신이라고 했다.
내가 묵고 있는 서쪽, 이곳부터는 파리장들이 사수하는 지역이다.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파리장들이 암암리에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겠다며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파리장들에게 가게 자릿세, 건물 가격을 세 배로 주겠다며 꾸준히 유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몽 마르트 언덕. 이곳이야 말로 지금 파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곳 낭만의 몽 마르트 언덕에서 인간들 간의, 사랑과 미움, 화합과 마찰, 애정과 질투가 전개되고 있다. 지금쯤은 몽 마르트 언덕을 무대로 이제 세계가 겪고 있는 고민을 그리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내가 20년만 더 젊었더라면, 나도 이곳에서 얼마 동안 살면서 이방인의 눈으로, 이방인으로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파리의 명물 캉캉쇼를 보기 위해 물랑루즈 극장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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