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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유럽여행-2] 사르트르씨, 당신 대물림할 지성인은 어디있나요

당대 문인들 아지트 파리의 '카페 마고'
사르트르 앉았던 자리서 과거와 오늘을 생각…

세느강의 시테섬 건너 서쪽에 ‘라틴 쿼터’라는 지역이 있다. 13세기경부터 소르본느 등등의 대학들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그 시절의 학자들이 대개 천주교 신부들이었고 성경을 비롯해 그들이 사용했던 글이 ‘라틴어’였기 때문에 라틴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란 의미로 ‘라틴 쿼터’라고 불려지게 됐다.

라틴 쿼터 입구라 할 수 있는 생 미셀(ST. MICHEL) 전철역을 빠져 나오면 생 세르랑(ST. SELERIN) 광장이 있다. 광장 앞에 카페가 있어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아마 ‘소르본느’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프랑스사람들이 ‘카페 마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고, 또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궁금해 책을 읽는 여대생, 또 그 옆의 중년 신사에게 ‘카페 마고’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런데 하나 같이 다들 모른다고 했다. 실망한 채 앉아있는데, 여학생이 물어보았는지 카페의 웨이터가 다가와서 불어로 ‘카페 마고’ 가는 길을 설명했다. 가만 듣고 보니 소르본느 대학의 언덕길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소르본느 대학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 조금 내려가니 과연 넓은 광장 코너에 ‘카페 마고’라는 사인이 보였다.

파리에는 노틀담 성당,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등, 너무나 볼 것이 많아 ‘카페 마고’는 관광 가이드들이 짜놓은 일정에는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 또 사실 그리 관광객들의 흥미를 끌만한 장소도 아니다. 나에게는 ‘카페 마고’가 파리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카페 마고’는 1910년대 오스카 와일드, 앙드레 지이드 등등 당대의 문인들이 모였던 아지트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 초현실주의(SUR REALISTS) 문인들의 사교장소가 됐고 이어서 사르트르, 카뮈 등 실존주의의 요람으로 명성을 날렸다.

앙드레 말로가 1933년 ‘공코르(Goncourt)’ 상을 받자, 이곳에 모이던 문인들은 같은해 ‘마고의 상(Le Prix des Les Deux MAGOTS)’을 제정해 초현실주의의 상징인 레이몽 칸트를 첫번째 수상자로 선정했다. 마고의 상은 아직까지도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카페 마고’는 또 한번 변신한다. 표면상 평범한 카페였지만 실제로는 레지스탕의 본부가 됐다. 이곳에서는 또 유명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한 서류 위조를 많이 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카페 마고’에서 시몬느 보봐르(Simone de Beauvoir)가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가 하면 헤밍웨이와 잡담하는 모습도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떠날 때부터 품어 왔던 ‘카페 마고’에 대한 나의 환상이 실망으로 변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노천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그다지 열띤 대화를 하거나 깊은 사색에 빠져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초점 없이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모습이었다.

날씨가 추워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다르겠거니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주문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 이름의 원조인 중국의 마고(STATUE)가 보였고, 벽 곳곳에 유명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 카페 안 모습 역시 내가 머릿속에 그려 왔던 것과는 달랐다. 배우 아랑드롱을 닮은 듯한 멋쟁이가, 누군가와 장사 이야기에 열중해 있었고 주먹코의 영화배우 장 가방 같은 사람이 혼자서 커다란 설계도면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외 두 쌍의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60대쯤으로 보이는 일본 여인이 젊은 사람에게 무슨 강의를 하는지 책을 펴놓고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화가들 같았다.

나와 동행한 아내는 피카소와 그의 여인 도라 마르(DORA MAAR) 사진이 걸린 벽 앞에 앉기를 원했으나 바로 그 아랑드롱 같은 친구를 방해할까봐 구석에 앉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앉은 의자 뒷 쪽 벽을 보니 조그만 글씨로 이름 하나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르트르’. 사르트르가 평소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속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진 금속글자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사르트르씨, 불란서를 넘어, 전세계에서, 앞으로 21세기의 철학, 사상, 그리고 인간의 삶의 가치를 정의할 수 있는 당신들의 대를 이을 지성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곳 카페 마고는 이제 떠나 버린 새들의 폐허가 된 둥지입니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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