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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유럽여행-1] '사색'이 있는 여행지, 유럽을 가다

유럽의 역사와 여행기가 어우러진‘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유럽여행’이 오늘부터 8회에 걸쳐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이는 작가 이영묵씨(페어팩스 거주)가 최근 지중해 연안국들을 돌면서 곳곳에 서려있는 역사와 감상들을 잔잔한 필체로 기록한 테마 여행기 입니다. 여행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돼 스페인 바르셀로나, 튀니시아, 시실리섬, 로마를 거쳐 제노아, 마르세유로 이어집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헤밍웨이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작가 겸 파리 특파원의 뇌리에는 젊은 시절 그의 삼촌이 던져준 충고 한마디가 깊이 박혀 있었다.

“빈둥거리며 멜로드라마를 쓰든지, 아니면 끝없는 도전과 여행을 해라 (소설다운 소설을 쓰려면…)”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한 줄의 글은 소설 속 주인공을 사로잡은 것처럼 한평생 나의 뇌리에서도 떠나지 않았다.

역사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써먹는 단골 이야기가 있다. “만일 알렉산더 대왕이 동쪽으로 가지 않고 서쪽으로 갔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가정이다. 그리스는 인류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이 있는 동쪽으로부터 문명을 받아들였다. 동쪽은 또 여러차례 그리스를 침략한 페르시아가 있는 곳이다.

반면 서쪽은 그들로부터 문화와 문명을 배워 가는 지역이었다. 서쪽에는 나폴리처럼 이미 그들의 식민 도시국가가 있었다. 정복이란 단어는 성립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역사에는 중요하면서도 충분히 현실성을 지닌 가정도 있다. 그중 하나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이겼다면 역사는 어찌 되었을까’하는 것이다.

이 가정이 만일 현실이었다면 오늘날 서양, 아니 세계는 우리가 지금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서양 역사는 기독교 역사며 기독교 역사는 로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로마가 전쟁에서 졌다면 기독교는 잘했어야 유대인들이 믿는 토속 종교의 한 종파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오늘날 전 유럽, 나아가 전세계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기독교 계통 건축물들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이번 크루즈 여행은 역사 순례라고 할 수 있다. BC 264년에 시작돼 100년 넘게 펼쳐졌던 카르타고와 로마의 1차 전쟁(포에니 전쟁) 현장인 시실리섬, 그리고 제2차 전쟁 때 카르타고 한니발 장군이 대군을 끌고 진군했던 이베리아반도의 바르셀로나, 한니발군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도달한 프랑스의 마르세유 지역, 그리고 다시 알프스를 건너 이탈리아의 제노바를 거쳐 로마까지 두루 항해하는 일정이다.

나는 크루즈 출발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기 앞서 프랑스 파리와 바르셀로나에서 2~3일씩 묵기로 하고 워싱턴의 덜레스 공항에서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랑스 파리

나에게 파리는 다양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도시다.

중·고등학교 사춘기 시절, 아마도 영화를 통해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를 처음 대했던 것 같다. ‘물랑루즈’ ‘노틀담의 곱추’ ‘파리의 아메리카인’ ‘쉘브르의 우산’ ‘내가 본 마지막 파리’ 등등….

프랑수아 사강이란 젊은 여류작가의 ‘슬픔이여 안녕’ 같은 신선한 사랑 이야기에 매료됐던 소년 이영묵을 생각하면 그 때가 지금도 마냥 그립다.

파리에 대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사색이다. 나이가 들면서 여행, 레지스탕, 그리고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양심의 작가로 자리매김한 앙드레 말로를 비롯한 사르트르, 까뮈 등의 철학적·사상적 작가들에 나는 매료됐다.

그리고 그들이 2차대전 중 주도적으로 펼친 소위 ‘레지스탕스’ 운동은 나를 사색의 세계로 빠지게 했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을 통해 나는 사색하고 세상을 여러 모습으로 바라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오늘날 프랑스의 모습에 약간의 섭섭한 마음도 갖고 있다. 사실 프랑스가 말이 2차대전 승전국이고, UN 상임이사국이지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랑스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국·독일 등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미국에 적극 협조적인 데 반해 유난히 프랑스는 미국 정책에 ‘딴지’를 거는 경우가 많다. 이라크 전쟁 때가 좋은 사례다.
오죽 미국 의원들이 화가 났으면 ‘후렌치 프라이스’라는 이름의 감자튀김을 미 의회 식당에서 ‘애국 프라이스’로 바꾸기까지 했겠는가. 도대체 프랑스가 그렇게까지 미국에게 도도하게 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게 이처럼 서로 다른 세 가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프랑스를 이번 여행을 통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중 인심좋은 ‘에어 프랑스’의 스튜어디스가 가져다 준 포도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준 스카치 위스키에 그만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한참 후 깨어 보니 어느덧 새벽. 비행기는 이미 파리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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