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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선 칼럼] 복수국적시대를 준비하자

본사 논설위원

2004년 9월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중심으로 재외국민참정권 획득 캠페인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캠페인에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에서 동포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구했다. 한인사회 인사들은 대부분 재외국민참정권을 적극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내가 접촉했던 동포사회 인사들의 상당수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인사회에서 꽤 지명도가 높은 변호사 A씨는 “의무가 없는 권리행사는 있을 수 없다”며 반대했다. 납세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재외국민들에게 투표권만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단체장 B씨도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이 한국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는 그들과 논쟁하는 대신 몇차례 칼럼을 통해 재외국민 참정권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재외국민 참정권은 헌법에 명기된 국민의 권리이자 세계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병역·납세 의무를 명분으로 내세운 반대론자들을 향해 대부분의 재외국민은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음을 지적했다.

병역의무 마치고 오랜 세월 성실하게 세금 내다 이민온 1세들이 적지 않은 반면 몸은 한국에 있어도 병역·납세 의무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적 현실을 거론한 것이었다. 병역을 기피하고 세금도 안 내던 사람들이 정치판 기웃거리다 어느날 국회의원 뱃지 달고 떵떵거리는 세태를 꼬집은 적도 있었다.

이제 재외국민 참정권은 현실이 됐다. 참정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년에는 이변이 없는 한 이중국적(한국정부 표현은 복수국적)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한인사회에서도 재외국민 참정권과 이중국적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재외국민 참정권에 반대했던 A 변호사도 입장을 바꿔 이제는 적극적인 이중국적 옹호론자로 변신했다.

복수국적 허용 범위가 제한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지만 한국정부가 뒤늦게 나마 복수국적을 허용키로 한 것은 7000만 한민족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정말 다행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음번 과제를 놓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명확하다. 한국의 복수국적이 형식적 제도로 그치지 말고 미주 한인사회는 물론 한민족 공동체 전체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미흡한 부분의 시정, 보완이다. 일반 복수국적 허용의 범위를 65세 이상으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다. 아마도 한국내 정서를 감안한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관점에서 재외동포에 대한 한국사회내 배타적 정서와 부정적 편견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젊은 재미동포 연예인이 오래전 장난 삼아 한국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언급한 것을 두고 난리를 치는 게 한국사회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해외동포에 대한 투자ㆍ지원을 늘리고 재외동포 인재들을 대상으로 한국사회의 문호를 확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재외동포가 한국의 소중한 인적 자산임을 입으로만 강조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말이다. 미주한국학교의 맞춤형 한국역사문화교재 편찬사업, 미주한인사회 정체성 교육의 구심점이 될 한국교육문화센터 건립 등은 당장 한국정부와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사안이다.

재외동포들 역시 모국을 향한 새로운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한국의 발전과 평화통일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다. 모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야 해외동포들도 긍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

국제화시대, 한국민과 재외동포는 한민족 공동체를 이끌고 나가는 양대 축이다. 성공적 복수국적시대를 위한 준비와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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