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공주는 잠 못이루고
아들의 방에서 음악이 들려온다. 이 밤에 왜 이리 음악은 크게 듣는지. 볼륨을 좀 낮추라고 말한다. 아들의 방으로부터는 파바로티의 음성이 푸치니의 선율을 타고 나온다. 한동안 대중 음악에만 심취해서 유명 그룹의 콘서트까지 다니던 아들이 다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작년에 AP 음악 이론 과목을 공부하면서 아들은 부쩍 음악의 세계로 깊이 들어간 것 같다.가요, 팝송, 클래식을 두루 들으면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아들도 다양한 음악을 듣기를 원해서 늘 많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가족이 함께 떠난 여행 길에는 늘 음악을 챙겨서 들고 갔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해서 몇 개 주를 관통하는 동안 나는 내가 전에 들었던 음악들을 늘 아들과 들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이미 아들은 비틀즈부터 모짜르트까지를 가리지 않고 듣는 광범위 잡식성의 음악 취향을 갖게 되었다.
미국인 친구들도 모르는 70, 80년대의 미국 대중 음악을 아들은 알고 있었고, 많은 뮤지컬과 오페라를 본 적 없어도 대표곡들은 두루 알고 흥얼거렸다. 순전히 내가 음악을 함께 들었던 탓이었다. 환경은 말없는 교육이고, 가정은 분명 최초이자 최후의 교실이 틀림없다.
나의 초등학교 2학년 시절,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탔던 내가 덜덜 떨면서도 웅변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 탄신 기념 웅변대회였는데, 나에게 웅변 원고를 써주시고 지도해 주신 삼촌이 그 때 우리 집에 함께 사시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추억을 지금 가질 수 없다. 삼촌은 그 때 국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우리 가족이 살던 일식 가옥의 이층 다다미 방을 쓰셨다. 그 방에서 삼촌은 문학을 공부하셨고, 시를 쓰셨으며, 혈기어린 친구들과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삼촌의 방에는 책이 많았다.
시집과 소설, 문학 이론, 철학, 미학 등의 책이 책꽂이에 있었고, 늘 원고지가 있던 책상에도 책이 쌓여 있었다. 나는 원고지가 좋았다. 삼촌이 원고지에 글을 쓰시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학교를 입학하기도 전부터 원고지를 만났고, 거기에 글짓기를 할 때마다 즉시 삼촌으로부터 지도를 받는 행운아였다.
삼촌은 군에 입대하면서부터 우리집을 떠나셨다. 내가 후에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으로 삼아 공부한 것은 그런 삼촌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직장 생활 중에도 시집을 내며 활동하신 삼촌은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많고 많은 전공 중에서 자신과 같이 문학을 공부하는 조카를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나를 불러내어 맥주를 한 잔 사주시고는 서점으로 이끌고 가서 책을 한 보따리 사주셨다.
대학 입학식을 앞둔 겨울 밤, 삼촌이 사주신 한 보따리의 책을 들고 집으로 가다가 올려 본 밤 하늘을 나는 지금도 그리워한다. 카프카, 헤세, 하이네, 괴테, 실러를 공부하던 대학 시절, 나는 삼촌의 다다미 방을 자주 떠올렸다. 문학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고, 많은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아들이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은 푸치니의 오페라 가운데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라는 곡이다. 좀 전에는 파바로티가 부르는가 했더니, 연이어 다른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은 많은 테너들이 부른 것을 연속으로 재생하도록 순서를 잡아놓고 같은 곡들을, 그러나 맛이 다른 곡들을 듣고 있다. 실황을 녹음한 것을 들을 때에는 박수 소리도 나온다. 도대체 같은 곡을 몇 개나 찾았을까 궁금하다. 아들이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었다.
갓태어나 병원으로부터 집으로 온 아들은 잠을 자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랐다. 원래 아기들은 다 그렇다지만, 자다가 자꾸 놀라는 조그만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집 안에 음악을 계속 흐르게 했다. 무언가 소음을 계속 나게 하는 것이 아기의 놀람을 방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읽었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볼륨으로 음악을 계속 흐르게 하니 아들은 과연 놀라지 않고 잘잤다.
카라얀과 베를린필, 조수미, 도밍고, 까레라쓰, 파바로티, 킹스 싱어즈, 로버트 쇼 합창단 등이 생후 1개월이 안된 아들을 위해 하루 종일 연주하고 노래했다. 많은 오페라의 아리아들과 각국의 민요, 또 잘 편곡된 팝송들까지, 나는 아들 인생의 첫 시간에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내가 좋아한 미샤 마이스키의 첼로 곡들,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곡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음악들을 디제이가 되어 핏덩이에게 틀어주었다. 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워낙 곡의 후반부가 웅장해서 일부러 볼륨을 줄여야 했던 곡이다. 그런데 그 곡을 지금 아들은 제법 큰 볼륨으로 듣는다, 밤인데도.
아들은 자신이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우유병을 입에 물고 있을 때 들었던 음악을 기억할까?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대학에서 공부하겠다는 아들이 대학 입학 원서를 준비하느라 매일 자정을 넘기며 씨름을 하는 날들이다. 환경은 정말 교육이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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