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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증인' 법정 전문가] 러셀 브래드포드 (필적 분석가) - '획'과의 숨바꼭질

"1mm짜리 점 하나로 수사관 2명 옷벗겨"
유언장은 사망직전 작성 가장 어려워
최근 불경기탓에 부도수표 의뢰 많아

1995년 8월29일. LAPD가 발칵 뒤집혔다.

경찰이 용의자의 진술서 서명을 위조한 사실이 재판도중 밝혀졌다.

수사관들은 용의자가 진술을 거부하자 용의자 서명을 오려 진술서에 붙인 뒤 복사한 사본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용의자는 살인범이었지만 무혐의로 풀려났고 경찰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LA타임스는 이 사건을 '짜집기한 문서 위조로 수사관 2명 파면'이라는 제목아래 같은 해 9월3일자 1면 톱기사로 보도했다.

해당 수사관들의 제복을 벗긴 주인공은 검사도 변호사도 아닌 글씨 전문가였다. '필적 분석가(Handwriting Examiner)' 러셀 브래드포드(78)씨다.

"당시 수사관들은 서명 위조가 깜쪽 같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미처 지우지 못한 '점'이 확대경 아래 나타났어요. 1mm에 불과했죠."

LA카운티 법정 전문가 증인 패널로 활동중인 그를 샌피드로시내 아담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필적 감정은 참을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필체를 크기 글꼴 필순 필압 방향 속도 다른 글자와 조화 등 7가지 특징으로 분석한다.

이후 '획'과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사본과 원본과의 대조작업이다. 용의자에게서 받아낸 샘플과도 비교한다. 이 작업은 길게는 한달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는 아무리 완벽한 위조도 7가지 기준과 대조작업의 수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크게 볼때 글씨는 얇거나 두껍고 크거나 작고 곧게 뻗었거나 휘어졌죠. 특징을 잡아내면 진위여부는 금방 판별되죠."

수사적 관점에서 볼때 분석하기 좋은 알파벳도 있다.

"획과 휘어짐이 많은 글자에서 개인 특성이 두드러집니다. 예를 들어 i와 l은 빈약해요. 반면 b와 k는 먹음직 스럽죠. 같은 이유로 숫자중에서는 4 5 8이 분석에 적합하죠."

그가 필적 감정에 보낸 세월은 48년이다. 이 업계에서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1961년 롱비치 경찰국에서 시작한 이래 4만4000여 사건을 담당했다. 87년부터 LA카운티 법정 증인으로 활동했는데 지난해까지 757개의 형사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의 판정에 용의자들의 인생이 바뀌었고 수천만달러의 재산이 왔다갔다 했다.

브래드포드씨는 가장 까다로운 분석 대상으로 유언장을 꼽았다.

유언장은 작성 전후 필적 대조가 원칙이다. 대부분 노년층이라 질병이나 체력적 문제로 필적에 변화가 있을 수 있어서다.

"유언장은 대부분 사망직전에 작성돼 전후 대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위조 시비가 많죠."

최근 가장 많은 의뢰는 경기를 반영한 듯 부도수표다. 또 마약 처방전 강도사건 경찰이 발부한 티켓 등의 순이다.

"티켓은 본인이 서명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죠. 돈 내기 싫어서 혹은 아이디를 도용당한 경우인데 경험상 거짓말일 확률은 반반이죠."

그는 필적 분석학의 미래를 '물음표'라고 했다. 밝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잊지않았다.

"필체는 사람의 인생과 같습니다. 태어나고 자라며 늙어 갑니다. 컴퓨터의 딱딱한 문자가 득세하고 있지만 크리스마스 카드에 꾹꾹 눌러쓰는 수고는 사라져선 안됩니다."

수많은 수사기록을 일일히 자필로 기록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고집 센 노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에게선 '잘 익은 장인'의 냄새가 났다.

샌피드로 사무실에서 만난 필적 분석가 러셀 브래드포드씨. 아래 사진 2장중 오른쪽은 1995년 LAPD 수사관들이 용의자 진술서 서명을 위조한 증거. 왼쪽은 당시 그의 활약상을 보도한 LA타임스 기사.

■필적 분석가와 필적학자

필적 분석가(Handwriting & Questioned Document Examiner)와 필적학자(Graphologist)는 구별된다.

필체를 분석하는 점은 같지만 목적이 다른 탓이다.

본지가 인터뷰한 러셀 브래드포드(78)씨는 필적 분석가다. 그는 서류나 서명의 진위 여부를 감별한다.

유언장 개인수표 공.사문서 위조 판별이 분석 대상이다. 잉크나 종이의 재료 필기도구 제작 시기도 가려낸다.

필적 분석가의 주임무가 '사실 추적'이라고 한다면 필적학자는 '추론'을 목적으로 한다.

글씨로 필자의 성격까지 추측해내는 것이다.

1875년 장 H. 미숑 주교가 저서 '필적학의 체계'에서 처음으로 소개했다. 당시에는 점술학적 성격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범죄수사 기법으로 발전했다.

지난 2001년 탄저균 편지로 4명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FBI는 범인이 보낸 간단한 편지를 통해 '성인 남자 타인과 접촉이 별로 없는 직업군 상당한 과학지식 보유 타인과 관계에서 테크닉이 부족한 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자'라는 결론을 추론했다.

용의자로 육군 전염병연구소 세균 전문가 브루스 아이빈스 박사가 지목됐으나 기소전 그가 자살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대부분의 필적 분석가들은 필적학을 신뢰하지 않는다. 동일인물이 쓴 글씨라도 작성 당시 상황에 따라 글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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