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영어가 권력이다
미국에 오기 전에 서울에서 살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해마다 여름이면 가족을 이끌고 다른 나라를 여행했다. 지도 들고 가방 메고 가족 손을 잡고 떠난 여행 길에서는 어느 나라에 가든지 영어를 해야 했다. 낯선 나라의 공항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도심으로 이동할 때면 늘 행선지를 확인하면서 긴장 속에 영어를 해야했다.지금 생각하니 항구와 버스 터미널, 국경 등에서는 언제나 영어를 하면서 땀을 흘리곤 했다. 고작 시간과 방향, 가격 등을 물으면서도 나는 늘 긴장했다. 그런데 내가 긴장 속에 영어를 하는 것을 보면서 어린 아들은 나에게 자주 물었다.
“아빠는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 하세요?”
내가 영어를 잘 한다고? 영어를? 그 때? 하긴 그 때는 아들이 어리고 영어를 전혀 못했었다. 그 때 서울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의 아들이 보기에 여행 중 나의 영어는 굉장한 놀라움이었다. 어린 아들은 외국 땅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외국어를 하는 아빠를 한없는 존경의 눈으로 보기까지 했다. 10년 전이었다.
미국에 온 이후로도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부터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아들에게 내가 영어를 가르쳐주고 작문을 지도해주는 일은 5학년 무렵부터는 불가능했다. 영어를 더 잘 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없었던 탓에 나의 영어 실력은 정지된 반면, 학교를 계속 다닌 아들은 일취월장하여 미국인과 같은 영어를 구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학생 시절 밤을 세워 책을 읽고 과제를 준비하면서 힘겹게 영어와 싸웠던 나는 한국인의 액센트를 못버리고 아직도 우리말로 사고를 한다. 조금만 집중을 흐리면 방송의 뉴스도 안들리고, 미국인이 빨리 말하는 것도 자주 놓친다.
여전히 우리말이 더 편하고, 우리말로 깊은 생각과 감정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미국에 산 햇수와 나의 영어 실력은 반비례하게 되었고, 영어에 관해서는 이제 아들이 훨씬 우위에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영어를 잘 하게 되면서부터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겨났다.
미국에 와 수년이 지난 후, 자기는 쉽게 하는 영어를 엄마와 아빠가 능숙하게 못하자 아들은 부모를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종종 미국인이 한 말을 못 알아들어 다시 묻는 경우, 뉴스를 듣다가 내용을 놓쳐서 묻는 경우, 아들의 눈에는 실망의 기운이 넘쳤다.
어린 자기도 알아듣는 것을 왜 엄마 아빠는 모르냐는 것이다. 영어 발음이 왜 그렇게 딱딱하고 어색하냐고 대어놓고 비판을 했다. 아들은 한 술 더 떠, 영어 실력이 부족한데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서 종종 나를 몰아세웠다.
그럴 때면,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 아빠가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부족한 영어 능력 때문에 부모로서의 권위가 점점 떨어짐을 느꼈다.
나는 힘 가진 사람이 맘대로 하는 ‘권위주의’를 싫어하지만, 교육을 하는데는 반드시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부모나 교사가 권위가 없다면 어찌 자녀와 학생을 이끌며 교육이 성립하겠는가?
그리고 그 권위는 자녀가 부모와 교사를 자연스럽게 존경하는 것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자신을 이끄는 사람이 자신보다 우월하고 더 크다고 느낄 때 생겨난다. 자신을 이끄는 사람이 자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권위는 설 자리가 없다.
케이블 티브이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여러가지 공과금 납부와 관련해서 자녀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가 자녀들로부터 핀잔을 들은 부모들은 저마다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영어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를 우습게 안다고도 한다. 과장을 보태면서 말하는 사람들은 부모가 자녀를 이끌 권력을 상실하고 자녀들이 가정내 권력을 키우는 힘을 영어로부터 갖는다고 말한다. 부모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자녀들이 볼 때, 분명 영어를 잘 못하는 부모는 작아보일 수밖에 없다.
영어를 능숙하게 못하면서도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고 답답한 삶을 살기를 피하지 않은 부모, 성실함으로 이국에서 언어의 벽을 넘어 자기 할 일을 하는 부모를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려면 자녀들이 더 자라야 할 것이다.
미국 땅에서 살면서 자녀들로부터 권력을 되찾아 자녀를 더 잘 이끌려면 영어를 더 잘 하면 좋겠다. 잘하기가 어렵다면, 잘하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 이제는 아들이 잔소리를 한다. “아빠, 왜 영어 공부 안하세요?”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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