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와 오늘] 이승만 망명 33년 만에 귀국, 좌우 모두 환영 성명
1945년 10월 16일 오후 5시 김포비행장을 통해 이승만 박사가 귀국하였다. 1912년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33년만의 귀국이었다.한국인들에게 독립협회부터 활동을 시작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했던 이승만의 귀국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보수정당인 한국민주당뿐만 아니라 조선공산당에서도 귀국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귀국 다음 날 이승만은 미군정의 하지 중장 아널드 소장과 함께 군정청(지금은 철거된 옛 총독부.중앙청 건물) 제1회의실에서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겠다는 요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미군정은 10월 20일의 연합군환영대회에서 이승만을 애국자로 소개함으로써 그에 대한 지지 입장을 적극 천명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군정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정회한 뒤 단독정부 수립 가능성을 천명한 정읍 발언으로 인해 미군정과 불화를 겪었다.
결국 이승만은 46년 말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그는 워싱턴을 방문 미국 정계 및 군부 요인들을 만나 로비를 벌임으로써 미군정이 좌우합작위원회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고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을 선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38선 이남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는 통일국가수립을 가로막은 '분단의 원인제공자'였는가.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의 궁극적 승리를 예견했던 '건국의 아버지'였는가. 아니면 정치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정치 9단'이었는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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