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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한국군 3사단 38선 돌파···'국군의 날' 기원 만들다

1950년 10월 1일 한국군 23연대 3대대가 강원도 양양에서 38선을 돌파했다.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38선 이북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실시해도 된다는 명령이 내려가기 일주일 전의 상황이었다.

왼쪽 사진은 국군 제3사단과 미군 장병들이 '38선 돌파' 표지판 앞에서 촬영한 것이다. 뒤쪽에 정래혁 중령(손으로 입을 가린 사람)도 보인다. 한국군의 38선 돌파는 보름 전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 북한군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동부전선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군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한 날을 기념해 1956년 9월 4일 대통령령 제1117호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했고 3사단에는 38선 돌파 기념비를 세웠다.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황이 역전되고 38선 이북으로 진격해 압록강에 도달했던 사실은 한국군에 하나의 전설로 기억되고 있다.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으니까. 그러나 38선 돌파가 미국에는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기억과 평가로 남아 있다.



미국의 합동참모본부에서 공간한 '한국전쟁'(대한민국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번역)에 따르면 38선 돌파는 하나의 '재앙'을 불러온 사건이었다. 유엔의 모호한 결정을 맥아더 장군이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38선 돌파가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미국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결전으로 인해 냉전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는 것이다.

38선 돌파는 맥아더 개인에게도 재앙이 되었다. 맥아더 장군은 중국군이 참전한 이후 행정부의 극동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중국 본토에 대한 공중 공격 및 해상봉쇄를 포함한 군사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으며 "더 이상 그의 불복종을 참을 수 없었다"면서 그를 해임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한국전쟁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개입'을 한 전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유엔의 깃발 아래서 싸웠던 한국과 미국 사이의 이러한 상반된 기억과 평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역사를 뒤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너무 우리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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