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우 결선투표 승리] [존 리우 승리 배경은] ‘소수계 후보’ 통했다
텃밭 아시안에 흑인·히스패닉 가세…랭글 의원·샤프턴 목사 지지 큰 힘
뉴욕시 감사원장 후보로 확정된 존 리우는 이민자라는 점을 부각시켜 흑인과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공략,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흑인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찰스 랭글 연방하원의원과 인권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 등의 지지가 큰 힘을 발휘했다.
정치 컨설턴트 행크 셰인코프는 “리우 후보는 흑인 유권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소수계 후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해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민자라는 점이 히스패닉 등 이민자 커뮤니티와의 연결고리가 됐다고 덧붙였다.
낮은 투표율도 리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투표율이 낮은 상황에서 소수계 유권자들의 몰표가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 PS163 투표소에는 리우 후보와 빌 드블라지오 후보 측 운동원 각각 1명만이 나와 썰렁한 모습이었다. 예비선거 때와 같은 치열한 캠페인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결선투표 투표율은 4%로 추산되고 있다. 데일리뉴스는 뉴욕시 민주당 등록 유권자 중 20만명이 투표에 참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경쟁자였던 데이빗 야스키 후보가 선거 일주일 전부터 전개했던 네거티브 캠페인의 약발이 먹히지 않은 점, 선거 하루 전날인 28일이 유대인 명절 욤키퍼인 관계로 야스키 후보가 막판 캠페인을 전개하지 않은 점 등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공익옹호관 후보 결선투표에서 이긴 빌 드블라지오 후보는 경쟁자와의 정책 차별화보다는 에이콘 등 커뮤니티 단체의 지지와 효과적인 캠페인이 승리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린 후보는 1994~2001년 공익옹호관을 지내 인지도가 높았지만 뚜렷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해 표심을 잡는 데 실패했다.
[존 리우 인터뷰] '경쟁 후보가 축하 전화, 본선거 승리 위해 최선'
사상 첫 아시안 뉴욕시 감사원장 당선에 한발짝 다가선 존 리우 후보는 뉴욕의 아시안 정치인으로 큰 족적을 남기게 됐다.
리우 후보는 2001년 뉴욕시 첫 시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지난 8년간 꾸준히 지역구인 플러싱에서 표밭을 다지며 뉴욕시 중앙 정치 무대로의 진출을 준비해 왔다. 한인사회의 크고 작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적극 나선 리우 후보는 아시안 정치인 지망생들에게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승리 파티에서 승리 소감을 밝힌 리우 후보를 만났다.
-지금 기분은.
"지지자들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그리고 영광스럽다. 뉴욕시 감사원장 민주당 후보직을 정식으로 수락하겠다.”
-본 선거를 준비하는 각오를 말해 달라.
"방금전 데이빗 야스키 후보로부터 승리를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야스키 후보는 매우 너그럽고, 나만큼 뉴욕시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인물이다. 본선거에서 승리한 뒤 내년에 감사원장에 정식 취임한다면 야스키와 긴밀히 협력해 뉴요커들을 위해 일하겠다.”
-가족들에게 할 말은.
"부모님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미국 땅을 밟았다. 우리 가족은 앞서 수백만명의 이민자들이 걸어온 길을 똑같이 밟아왔다. 가족들에게도 감사한다. 위대한 도시 뉴욕과 위대한 국가 미국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겠다.”
[그는 누구인가] 한인사회에도 각별한 관심
아시안 최초의 뉴욕시 감사원장에 한발 다가선 존 리우(41·사진) 민주당 후보는 1.5세 이민자다.
1967년 1월 8일 대만에서 태어나 5세때 아버지 조셉 리우(73)와 어머니 제이미 리우(69)와 함께 이민왔다. 퀸즈에서 자란 그는 PS20와 PS22, PS203 등을 다녔고 헌터중고와 브롱스과학고를 다닌 뒤 빙햄턴 뉴욕주립대에 입학, 1988년 수학·물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에퀴터블 생명과 휴이트 어소시에이츠, 타워스 페린,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등 보험·금융회사에서 14년을 근무했다.
리우 후보는 2001년 아시안 최초의 뉴욕시의원에 선출되고 재임에 성공하면서 뉴욕시의 대표적인 아시안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감사원장 선거가 그에겐 두번째 정치적 도전인 셈이다.
그는 감사원장 선거 캠페인 TV광고에서 정치 입문 계기를 “백인계 시의원이 아시안 커뮤니티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리우 당선자는 1997년 시의원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시고 2001년 두번째 도전에서 당선됨으로써 아시안 정치력 신장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다.
시의원 시절 8년 동안 지역구(20선거구)인 플러싱을 넘어 뉴욕시 전체 아시안 커뮤니티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특히 한인과 중국인 사회를 비롯한 각 소수계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인사회와도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경찰에 폭행을 당하고도 억울하게 경찰 폭행 혐의로 체포됐던 이인수씨 사건, WB11 개고기 허위보도 사건, 한·일 월드컵 야외응원전 등 한인사회의 굵직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나서 해결했다.
리우 후보는 아내 제니(41), 아들 조이(8)와 함께 플러싱에서 살고 있다.
신동찬 기자 shin73@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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