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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일본이 동방의 영국이 되려 하니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프랑스로'

1870년대 초 박규수의 사랑방을 드나들며 개화사상에 눈뜬 김옥균(1851~1894.사진)은 1882년 두 차례에 걸쳐 메이지(明治)시대 일본을 둘러보고 마음 깊이 큰 뜻을 품었다. 사진은 박영효와 함께 일본에 갔을 때 나가사키의 우에노(上野) 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다. 그때 그는 서재필의 기억처럼 "시대의 추이를 통찰하고 조선을 힘 있는 근대국가로 만들기를 절실히 바란" 선각이었다.

"청국이 자기 멋대로 조선을 속국으로 생각해온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우리나라가 떨쳐 일어날 희망이 없는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청국의 속박을 물리치고 완전한 자주국을 세우는 일이다."

임오군란 이후 거세어진 청국의 간섭을 주권침해라고 생각한 그는 한시바삐 청국을 몰아내고 명실상부한 독립국가를 세우고 싶어 몸이 달았다.

1884년 8월 청불전쟁이 일어나 조선 주둔 청국 군의 절반이 월남으로 급파되기에 이르자 그해 12월 일본을 등에 업고 청국을 이 땅에서 내몰려 했다.

그러나 김옥균의 꿈은 원세개가 동원한 무력 앞에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때 그는 청국의 패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자가당착을 범했다.

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한 그는 1894년 한.일.청 세 나라가 힘을 모아 서구의 침략을 막자는 자신의 구상을 이홍장에게 설파하고자 상하이로 갔다가 자객 홍종우의 총탄에 맞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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