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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국제정세 오판한 황준헌의 '조선책략'

"사신의 별 멀리 비춰 섬나라에 이르니 황제의 은택이 곁으로 흘러 바다 한가운데까지 두루 미치네." 1877년 주일 청국공사관의 참찬관으로 일본행 배에 오른 29세의 황준헌(사진.1848~1905)이 읊은 시구에는 변방 일본에 대한 우월의식이 가득 넘쳐흐른다.

서양과 교류가 잦은 광둥성의 객가인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메이지 일본이 일구어 놓은 문명개화의 새 세상에 접해 그는 문화의 중국화를 기준으로 문명과 야만을 가르던 화이론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일본을 대등한 독립국이자 연대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러시아를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공로증(Russophobia)에 감염되었으며 그 침략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된 아시아 연대론에도 빠져들었다.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대해 자강을 도모하라." 그가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온 김홍집에게 러시아를 막는 묘책으로 건넨 『조선책략』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한 세기 전 '힘의 정치'가 작동하던 그때. 그가 '연작처당'의 경구를 빌려 그 침략성을 강조한 러시아보다 "한 번도 토지와 인민을 탐한 적이 없다"던 중국과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라던 일본이 우리에게는 더 큰 침략자였다. 또한 "늘 약소국을 돕는다"던 미국도 그때 우리 편이 아니었다.

균세와 자강이 여전히 우리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인 오늘 우리가 그의 『조선책략』에서 얻을 교훈은 자력 없이 남의 힘을 빌리는 술책만으로 다시 돌아온 열강 각축의 세상을 뚫고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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