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그때와 지금] 제1차 세계대전은 4년 간의 참호전···흙탕물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

20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 세계대전에는 숫자가 붙는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39년 9월 '타임'지가 두 전쟁에 처음 숫자를 붙였다.

그전까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대전쟁(Great War)' 또는 '4년 전쟁'으로 불렸다. 초기에 유럽인들은 전쟁이 기동전으로 곧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기관총의 등장으로 방어하는 진영이 유리해지자 연합군과 독일군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서부전선'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서 공격해오는 적을 막는 데 주력했다. 1914년 12월에는 스위스에서 영국해협까지 거의 1000㎞에 달하는 참호가 구축됐다. 참호전은 4년 동안 계속됐다.

참호 속에서 비는 무서운 적이었다. 전선 북부의 플랑드르 지방은 비도 잦았지만 지표면이 바다보다 낮아서 땅을 파기만 하면 물이 솟아올랐다. 이 지역을 맡은 영국군에게 가장 큰 적은 물과 진흙이었다.

참호는 늘 진흙탕으로 발목까지 빠졌고 더 깊이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병사들은 때로 허리.겨드랑이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물속에서 며칠씩 계속 근무를 서야 했다.

1914년 10월25일부터 이듬해 3월 10일 사이에 비가 오지 않은 날은 18일뿐이었다. 이 가운데 11일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1916년 3월에 내린 비는 35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전쟁 중 작성된 대대 보고서에는 진흙탕으로 인한 고통을 언급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때로 병사들은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체중을 골고루 분산시키려고 길게 누워야만 했다. 1916년 솜 전선의 참호에서 한 대대는 진흙 속에서의 탈진과 익사로 16명의 병사를 잃었다. 한 병사는 46시간이나 목까지 차는 진흙 속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구조됐지만 결국 15분 만에 죽고 말았다.

포탄 터진 자리에 생긴 구멍도 위험했다. 전투 중 부상해 정신이 혼미해진 병사에게 물이 찬 포탄 구멍은 죽음의 덫이 되곤 했다. 소총이 진흙에 빠지면 작동이 안 됐기에 병사들은 사격을 하기 위해 총에 오줌을 갈겼다. 1917년 프랑스 병사들은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돌격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양떼처럼 '음매~' 소리를 내며 전진한 것이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정치인.지휘관들에 대한 애처로운 저항이었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