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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술병 속에서 시가 울던 명동의 은성

1958년 가을 명동의 막걸리집 '은성'에서 박수 소리가 터졌다. 술집 주인 이명숙(86년 작고)의 18세 외아들이 서라벌예대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던 시인 변영로(1897~1961)가 술잔을 내밀었다. "영한아 술 한 잔 받아라." 쭉 들이켠 뒤 막걸리 잔에서 술 지게미를 바닥에 털던 영한에게 시인이 냅다 뺨을 갈겼다. "이놈 곡식을 왜 버려?" 영한은 연기자 최불암의 본명이다.

그의 부친 최철은 영화제작자였는데 '내일 없는 그날'을 영화로 제작하던 59년 과로로 세상을 뜬다. 어머니는 대한제국 궁내악사를 지낸 분의 딸로 남편을 여읜 뒤 인천 동방극장 지하에 '등대'란 음악다방을 운영하다가 명동으로 와서 '은성'을 차린다. 단골이었던 소설가 이봉구('명동백작'으로 불렸다)는 이곳 풍경을 작품 속에 남겼다.

56년 3월 저녁 '은성'에 앉은 박인환(당시 30세)은 시를 쓰고 있었다. 쌓인 술빚이 미안해서 시라도 써서 갚자는 마음이었을까.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로 시작하는 '세월이 가면'은 그렇게 탄생한다. 언론인 극작가였던 이진섭(1922~83)이 곡을 붙인다.

'백치 아다다'의 가수 나애심(가수 김혜림의 모친)이 곡을 따라 흥얼거렸다. 나중에 들어온 테너가수 임만섭이 곡을 보더니 열창을 했다. 이날 낮에 망우리에 있던 첫사랑 여인의 묘지에 다녀왔던 박인환은 이 시를 남기고 사흘 뒤 만취한 상태로 숨져 망우리 그녀의 곁으로 갔다.

64년 1월 9일 수필가 전혜린(당시 31세)은 밤색 밍크 코트를 입고 명동의 '은성'에 나타났다. 그녀는 쾌활했다.

"국제 펜클럽대회에 나가려고 건강진단을 받았거든. 글쎄 내 몸이 괴물처럼 건강한 거야…. 박인환이 그리워. 가난에 시달리면서 미군 담요로 외투를 만들어 입고 머플러를 휘날리며 시를 읊던…." '은성'을 나오면서 전혜린은 친구에게 속삭였다. "하얀 세코날(수면제) 40알을 구했다고!" 이튿날 그녀는 수유동 숲길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2004년 EBS에서 60년대 '은성'의 기억을 다룬 '명동백작'이 방영됐고 올 들어 혜화동에선 '세월이 가면'이란 연극이 올려졌다. 은성도 인환도 혜린도 가버린 명동 쓰러진 술병 속에서 우는 가을 바람(박인환 '목마와 숙녀'중에서)만 돌아와 나뭇잎을 흔든다.

이상국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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