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미 투자 보류 원인된 '황영기 전 행장 문책'…미국에선?
투자도 경영…실패 책임은 은행에
CEO 개인 징계 한국서나 가능한 일
비리·월권 행위 등에만 정부서 개입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우리은행장 재임 시절인 2004~2007년 사이 15억8000만달러를 금융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결정을 내렸다가 90%의 손실을 기록했다. 한국 금융감독 당국은 그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있었다며 황 회장에 사후문책성 중징계를 내렸다.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 사후책임을 묻는 한국의 모습은 미국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금융사기나 위법 사항 등이 적발되면 당사자가 형사처벌과 함께 징계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투자 손실 등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그에 따른 리스크를 지는 경영진의 결정을 존중하는 편이다. 따라서 이같은 차이는 은행 경영을 바라보는 한미 양국 금융감독 당국의 규정 및 인식 차이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종건 변호사는 "CEO의 결정으로 투자가 손실이 난다면 은행 자체적으로 해고를 하지 정부 차원에서 징계를 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며 "뱅크오브아메리카나 씨티그룹의 CEO가 의회에 불려간 것도 구제금융 때문이지 이들이 낸 손실 때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는 투자원칙이 공기업의 성격이 강한 금융기관들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이를 두고 감독 차원에서 책임을 운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연방준비은행(FRB)은 올들어 총 124건의 징계를 내렸는데 이 가운데 개인을 상대로 한 것은 21건에 불과하다. 이 21건 모두는 중대한 규정 위반이나 형사 수준의 범죄와 연관된 개인들에 대한 것이다.
지난해 모 한인은행의 지점장이 금고내 현금을 유용하다 적발돼 다시는 은행일을 하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던 것이 좋은 예이다.
한국 금융감독원 뉴욕사무소의 박남규 팀장은 "미국에선 단순히 손실이 난 투자 결정에 대한 징계는 어렵다. 그러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월권행위가 있었거나 위험하고 건전치 못한 영업행위에 대한 징계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단지 미국에서는 개인에 대한 징계가 인신을 구속하는 문제기에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은 입장 차이는 이사회에 보다 많은 힘을 실어주는 미국의 은행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은행들은 제각각 투자 지침서를 갖고 있으며 감독국에서는 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감독국은 정기 감사에서 투자의 적정성도 따져보는데 투자건이 이사회의 승인을 받았는지 혹은 숨기려거나 허위로 보고가 되지는 않았는지 등이 주요 감시 대상이다.
한 한인은행의 간부는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사회에서 나오는 구조이기에 그에 따른 책임 여부는 이사회에 묻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는 투자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라며 "CEO가 제대로 보고를 안했거나 적절한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개인에게도 징계가 내려지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정부기업 주식으로 '쓴맛'
■ 한인은행 투자실패 사례
은행은 고객의 예금을 기반으로 투자를 진행하기에 큰 수익을 목표로 하는 적극적인 투자 보다는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지불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채권 등을 위주로 한 소극적인 투자를 진행한다. 한인은행들 역시 다른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우량기업 우선주나 국공채 등에 투자를 진행하지만 이들의 투자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한미은행은 지난 2002년 7월 파산했던 월드컴의 채권 500만달러를 보유했다가 440만달러를 손실처리 했던 바 있다.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지난해 중순 경에는 다수의 한인은행들이 연방주택은행, 패니매, 프레디맥 등의 정부 소유 기업의 신탁우선주(Trust Preferred Stock)을 보유하다 투자액의 90% 이상을 손해보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엔 금융위기가 터지며 수많은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금을 허공에 날려야 했는데, 일부 한인은행에도 그 불똥이 튀었다. 한미은행은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한 직후인 지난해 9월19일자 공시에서 “보유하고 있던 리먼브라더스 선순위채권(Senior Debt)의 시장가격이 폭락해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한미는 리먼브라더스 채권 외에도 금융 파생상품 거래(Derivative Transaction) 관련 회수금 120만달러도 걸려 있었다.
실적 부진땐 가차없이 낙마
■ 한인 은행장 문책 사례
한인은행권에서는 투자실패에 따른 책임을 행장에 직접 물은 사례는 많지 않다. 다만 한인 은행장들은 경영실적 부진을 이유로 줄줄이 낙마해왔다.
웰스파고 은행 부행장까지 올랐던 스타 뱅커이자 월스트리트저널이 ‘가장 정확한 경제 예측가’로 선정하기도 했던 손성원 전 한미은행장의 퇴임이 대표적이다. 6년 임기의 절반만 마친채 ‘개인적인 이유’로 떠난다는 그였지만 한인은행가에 ‘커뮤니티 은행’에서 ‘지역 은행’으로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던 화려한 데뷔에 걸맞지 않았던 초라한 성적표로 미뤄볼 때 그의 사임 이유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벤자민 홍 전 행장은 이사회와의 마찰로 나라은행에서 물러났으며, 새한에서는 불어나는 부실대출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된 점이 퇴임의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외에도 유니티은행의 2007년 임봉기 전 행장(현 FS제일은행장) 사임, 2006년 새한은행 김주학 전 행장(현 유니티은행장) 사임, 2008년 FS제일은행 구본태 행장 사임, 올해 미래은행 박광순 행장 사임 등도 같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이 어느 한쪽에 있다고 일방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임에는 분명하나 결과는 항상 행장 교체로 마무리되니 은행가에 ‘행장 잔혹사’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돌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염승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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