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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노인 동맹단' 강우규 의사, 조선 총독 향해 폭탄 투척

3.1운동은 이 땅의 민초들에게 나라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한 이정표였다. 그들은 그 누구의 신민이 아닌 공화제 민주정부를 세울 시민이 되고 싶었다.

그 꿈은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1919년 3월26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인동맹단' 결성을 주도한 노인들에게도 조국의 독립은 포기할 수 없는 확호불발한 이상이었다.

그때 그들은 일제 요인 암살을 통한 적극 투쟁이 독립 달성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책무를 자기 어깨에 걸머진 이가 바로 64세 노인 강우규(1855~1920.사진.일제하 서대문형무소 수형 카드)였다.

그해 9월2일 오후 5시쯤 그의 손을 떠난 폭탄 한 발이 신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탄 쌍두마차 앞에서 굉음을 내며 터졌다. 마중 나온 일제 요인들로 북적대던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 귀빈실 주변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됐다.

표적이었던 사이토는 요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3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 사건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눈발이 휘날리던 1920년 2월15일 키가 크고 둥근 얼굴에 은실 같은 호랑이 수염을 기른 그는 회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발을 퉁퉁 구르며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거사 이유를 묻는 판사의 질문에 당당히 소신을 밝혔다. "일본은 불의로써 우리나라를 병탄했다. 이는 세계의 인도가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 조선의 국민으로 너희들의 노예로 복종할 수 있겠는가. 일본은 조선을 지배할 능력이 없으며 이른바 동화란 유치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해 11월29일 서대문형무소 교수대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앗긴 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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