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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패밀리 케네디 가문, 가난한 이민자에서 미국의 상징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과 박물관 벽에는 수백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중 관람객들의 눈길을 잡는 사진 한 장은 1930년대 후반에 찍은 가족 사진으로 조 앤 로즈마리 케네디가 그들의 9명의 자녀들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관람객들은 왜 이사진에 주목할까.

물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있기때문이지만 법무장관 하원의원은 물론 장애인을 위한 올림픽 창시자 등 미국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들이 한 가족 사진 안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케네디가는 미국의 유물이며 명문가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에드워드 케네디의 사망으로 케네디가의 1세대 시대가 사실 막을 내렸지만 케네디가는 앞으로 수백년을 거쳐 살아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너무도 미국적인 케네디가는 처음부터 명문가로 출발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뿌리는 먹을 것이 없어 아일랜드에서 보스톤으로 건너온 가난한 이민자였다.

하지만 2대부터는 지방 정계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냈고 3대에는 부를 축척했고 4대에는 대통령 및 정계 진출로 권력과 명성을 얻으며 이민자 승리의 전형을 보여줬다.

케네디가를 탄생시킨 가난한 농민이었던 패트릭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당시 아일랜드계 가톨릭 교도들은 사회의 최하층에 속해 있었으며 멸시와 천대 차별을 받는 계층이었다.

이런 일가를 권력과 명성을 지닌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가문으로 끌어올린 힘의 원천은 '대가족주의'로 알려졌다. 또한 케네디가만의 가정교육과 철학이 있었다.

케네디가를 이끌었던 조셉 케네디는 자신의 아버지가 가르쳐준 "1등을 하라! 2등 이하는 패배다"라는 가훈을 자식들에게 심어주며 강한 경쟁의식을 가지게 했다.

조셉 그 자신도 그러한 정신을 물려받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일랜드계 출신의 주영 대사가 됐다.

아내 로즈마리는 보스턴 시장 자리에 두 차례나 올랐던 아일랜드계 출신 피츠제럴드가의 장녀였다. 어려서부터 외국을 여행했으며 지적인 미국 여성의 표본이었던 로즈는 자식 교육에 있어서만은 전통을 따르고 엄격했다.

그 당시에도 케네디가는 부자였지만 검소하게 키웠다. 거기에는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아들에서 손자로 이어지는 대가족 공동운명체라는 정신이 깔려있었다.

여기에 세대를 거치면서 재력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해 가족중심에서 사회에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케네디가의 교훈 중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행동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를 대중들이 교훈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은영 기자

eyoung@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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