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 플레이스] 김 전 대통령의 평가
박용필/객원 논설위원
트루먼은 한국전쟁을 제대로 마무리 못해 우리에게도 비호감으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맥아더 보직 해임이 그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심지어 탄핵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 그는 참담한 심정으로 백악관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학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올해 초 정치전문 케이블 채널인 C-SPAN이 교수들을 상대로 한 대통령 평가 순위 조사에서 믿기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트루먼이 조지 부시를 포함한 역대 대통령 43명 중 5위로 랭크된 것. 1.2위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조지 워싱턴 3.4위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바로 다음이 트루먼이었다. '세기의 국장'으로 거창한 장례식을 치른 로널드 레이건은 10위로 턱걸이했다.
C-SPAN 조사에서 뿐이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포함한 각종 조사에서도 트루먼은 상위에 올라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것. 꼴찌의 반란도 이런 경우는 드물 것이다. 대통령은 당대의 사람들이 아닌 후대의 역사가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나온 김에 트루먼 얘기를 더 해 보자. 가난한 농삿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최종학력이 고등학교 졸업. 정계입문도 계보를 통해서다. 어느 보스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이른바 '거수기'(the machine) 노릇을 하며 정치의 밑바닥을 배운 것. 보스의 공천을 받아 카운티 선출직 공무원에 당선된 트루먼은 이후 자력으로 정치의 지평을 넓혀 끝내 최고 통치자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런 트루먼이 정치인을 혐오하고 경멸했다는 사실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계보정치의 폐해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 이런 의식을 갖게 된 모양이다.
트루먼은 정치인을 '폴리티션'(politician)과 '스테이츠맨'(statesman)의 두 부류로 나눴다. 전자는 정치(政治) 모사꾼 후자는 옳을 正을 써 '정치가'(正治家)라고 번역해야 원래의 뜻에 가깝다. 폴리티션은 넘쳐나는데 올바른 식견을 가진 스테이츠맨은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는 정치판. 트루먼은 이를 개탄한 것이다.
그가 남긴 말은 정치학 교과서에도 실려 후대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폴리티션이 스테이츠맨이 되려면 최소한 15년은 죽어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몸에 밴 야합과 독선 권력에 대한 집착 따위를 떨쳐내야 비로소 참 정치인이 될 있다는 의미다.
퇴임 후 미주리주의 고향 마을로 되돌아 온 트루먼은 후임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은퇴노인들의 건강보험인 메디케어는 린든 존슨 대통령 때 시행됐지만 당초 트루먼이 추진했던 정책. 존슨은 트루먼 부부 앞에서 이 법안에 서명하며 직접 보험카드를 건넸다.
폴리티션으로 시작했을지언정 스테이츠맨으로 끝을 맺은 트루먼의 정치일생. 그의 재임시 치적이 나중에 재평가를 받아 꼴찌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엊그제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퇴임 시 지지율은 20% 안팎이었다. 그는 과연 어떤 대통령이었을까. 한민족 통합의 주춧돌을 세운 스테이츠맨일까 아니면 계보.지역정치의 끈을 놓치못한 폴리티션일까. 좌.우의 시각에 따라 서로 엇갈린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판단은 훗날 역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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