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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선생님은 행복한 지도자셨습니다

황석영/소설가

김대중 선생님의 영전에 올립니다. 선생님 출국하려고 짐을 꾸리다가 지금 막 당신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아 한 시대가 끝났구나! 라고 짤막하게 한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1970년대에 선생님께서 앞장섰던 민주화 투쟁의 대열에 함께 동참했던 것이 저와의 첫 번째 인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몇 차례의 사선을 넘어 80년 광주의 고비에 이르렀을 때 저는 광주에서 수많은 젊은이와 선후배들을 떠나보내야 했지요.

문익환 목사님과 방북한 뒤 베를린에 머물고 있던 시절 저를 만나 걱정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투옥되었다가 선생님의 배려로 사면석방되었지요.

제가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렇듯 몇 가지 회상해 보는 것은 동시대인으로서 선생님의 고난과 역경을 목격하고 안타까워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면에서 또한 이름 없는 수많은 민초들이 겪었던 삶의 어려움도 선생님은 함께 겪어 오셨다는 점에서 결국은 행복한 지도자셨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정치 초년 시절부터 혁신적인 통일관을 주장해 오셨으며 그 때문에 사상적으로 오해받고 핍박을 당해 오셨습니다. 당신을 폄하하여 지역주의의 원천인 것처럼 공박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권력을 위하여 억압하는 쪽에서 형성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동서의 갈등과 이른바 호남 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인 편견이 되어 왔으며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운명적으로 소수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지요. 군사정부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직접선거의 때에 김영삼 선생과의 후보 단일화가 실패하면서 우리는 좌절했고 정당과 정치의 전국화는 함께 좌절되었습니다.

당시의 그 통한스러웠던 새벽이 생각납니다. 그 빚은 고스란히 남아서 영호남의 분할과 변하지 않는 지방 토호 세력의 정치 세력화 그리고 아직도 민주화되지 않은 형식적 민주주의와 정당 등이 우리의 개혁을 기다리고 있지요.

선생님께서는 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선구자의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남북 단일정부를 위한 희생과 노력이 있은 뒤에 전쟁이 일어났고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과 반목에 얼어붙었던 상황을 단숨에 걷어 버리신 선생님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쾌거를 역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같은 해 12월에 수상하신 노벨 평화상은 분단된 반세기 동안 전쟁과 냉전의 땅에서 한을 풀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혼령들에 대한 하나의 위안이요 날마다 대포를 베고 자고 깨어나는 남북 민중의 염원을 달래준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냉전체제가 끝난 뒤에도 80여 개의 나라들이 분쟁을 겪었으며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계 각처에서 희생되었습니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근대화라든가 혁명이라든가 자유와 해방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수많은 사회적 낭비와 우여곡절의 상처를 남긴 뒤에야 겨우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도처의 역사적.사회적 경험에서 배웁니다.

경직된 남북의 상황이 그나마 풀리는 듯한 조짐이 보이는 이 무렵에 선생님께서 영면하신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안타깝습니다. 민족의 원로로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조언과 가르침을 더 해주실 수 있었을 텐데요.

선생님의 뜻을 이어 우리는 기필코 선진적 민주주의의 완성과 민족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선생님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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