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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아이 편에서 생각하는 것

아들이 자라면서 아이 편에서 생각하려 해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점점 생기고 아들의 눈높이를 도무지 파악하기 힘들 때가 많게 되었다.
아들이 고교생이 되어 2년이 지났을 때, 하루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빠, 저 한 과목을 그만 두고(drop) 싶어요.”

“왜? 공부하기가 어렵니?”

“아니오, 선생님이 싫어요.”

선생님이 싫어서 공부를 하기가 싫은 것인지, 아니면 그 과목이 어려워서 공부를 하기가 싫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고교생이 학기 중에 수강 과목을 중단하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학기 중에 수강 과목을 그만 둔 적이 없었다. 고교생인 아들이 학기 중에 수강 과목을 포기하다니, 나는 아들을 어떻게든지 설득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완강했다.

아들에 따르면, 그 과목 선생님은 지나치게 까다로와서 열심히 준비를 해가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점점 그 과목을 공부하기가 싫어졌고, 그러다보니 학기가 끝나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들은 카운슬러 선생님께 가서 절차를 밟아 그 과목을 자기 시간표로부터 빼기 위해 부모인 나의 확인을 요청했다. 나는 카운슬러 선생님을 찾아갔다.

무엇보다도 그 때 아들이 원하는 일이 과연 후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인지가 우선 궁금했고, 가능하면 그 과목 선생님과도 만나 아들의 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싶었다. 아들의 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선생님으로부터도 아들에 관해 듣고 싶었다. 나는 솔직히 아들이 무슨 어려움이 있든지 그 과목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공부하게 만들고 싶었다.

카운슬러 선생님은 학생이 공부하던 과목을 학기 중에 그만두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전적으로 학생과 부모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요청한대로 아들이 그만 두고 싶어했던 과목의 선생님이 오셨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우선 한 후, 그 동안 아들을 이끌면서 보신 것들을 말씀해주시기를 요청했다. 어떤 길이라도 있다면 아들이 그 과목을 계속 공부하도록 잘 도와주시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선생님은 시종 자신의 결백(?)만을 주장했다. 그 선생님에 의하면, 아들은 과제를 충실하게 안해오는 학생이었다. 더 잘 할 수 있지만, 열심히 하지 않아서 좋은 성적을 도무지 줄 수 없는 학생이었다.

나는 그 과목이 예능 과목이었기에 평가에 있어 선생님의 주관적인 견해를 모두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또 아들이 그 과목을 준비하느라 여러 밤을 고생을 한 적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의 말만 믿기보다는 선생님의 경험을 듣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아들이 그 과목을 계속 공부할 길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바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공정함만을 계속 피력했다. 모든 것은 아들의 책임이었다. 자신의 지도를 잘 따르지 않는 아들이 모든 문제의 중심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선생님과 대화를 하기 힘들었다.

“선생님, 저는 부모로서 이 학교의 학생들이 모두 우수하고 책임감있는 아이들이라고 믿습니다. 또 그런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들 역시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교사나 학생의 결점을 따지는 것은 그리 도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훌륭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저의 아들과 선생님 사이의 궁합(Chemistry)이 안맞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웃으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선생님께서 자리를 떠나신 후, 카운슬러 선생님께 정중하게 그 과목을 아들의 수업 시간표에서 빼주실 것을 말씀드렸다. 자기 과목 수강을 중단하고 싶다는 학생의 부모 앞에서 자신의 결백만을 주장하는 선생님께 믿음이 덜 갔기 때문이다.

만일 그 분이 나에게 자신도 앞으로 더 애쓸테니, 아들이 더 잘 하도록 가정에서도 이끌어 달라는 말을 한마디만 했다면 나는 아들을 구슬러 그 과목을 계속 공부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결과적으로 아들의 편에 선 모양이 되었다.

그 날 저녁이 되어 집에 왔을 때, 아들은 조심스럽게 나를 보았고, 나는 차분히 말했다.

“아빠는 네 편이다. 그 과목은 그만 하게 되었어. 그리고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나는 종종 그 때 내가 아들의 편에 안섰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를 상상해 본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을지 떠오르는 것은 없지만, 그 당시 중요한 일에서 아빠가 자기 편이었음에 아들이 기뻐했던 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서로간의 믿음에 관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 일을 계기로 나를 대하는 아들의 태도도 바뀌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이 편에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모든 것을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아이 편에서 생각해야 할 때’를 놓쳐서는 안되겠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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