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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미제(美製) 아줌마'

원칙만 아셨던 공직자였던 아버지는 청렴하게 대한민국 공직자 생활을 하셨다.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던 70년대에 아버지께서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만 하셨지만, 우리 가정의 경제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 남매의 속옷과 양말을 자주 기워서 입히셨고, 나는 늘 형이 입던 교복을 물려받아 입었다. 그 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는지, 아니면 우리집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무엇 하나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종종 남대문 시장에 가셔서 우리 남매가 입을 옷을 사오셨는데, 그것들은 분명 새것은 아니었지만 제법 디자인이 좋았었다. ‘구제품’이라 불리우던 옷들이다.

미국인들이 입다가 내어놓은 것들을 걷어서 한국으로 수입해 온 것들이었는데, 종종 아주 심하게 독특한 냄새가 났었다. 어머니는 빨아도 없어지지 않는 그것이 미국인들의 냄새라고 했다.

나는 색깔과 디자인이 좋은 미제 구제품 옷을 자주 입었다. 옷말고도 ‘미제’는 또 있었다. 70년대에 드물게 미국 여행을 다녀온 부모들로부터 미제 장난감과 학용품을 선물 받은 친구들이 학교에서 연필이라도 한 자루 주는 날은 횡재를 한 것 같았다.

미제 연필이라는 게 그 때나 지금이나 황토색 몸통에 지우개가 머리에 달려있는 모양이 하나도 다를게 없었지만, 미제는 그저 좋아보였다. 그리고 ‘미제 아줌마’는 그렇게 살았던 70년대 나의 한국의 기억 속 한 부분이다.

친척도 아니면서, 친구도 아니면서 어머니를 만나러 우리 집을 찾아오는 그 아줌마는 항상 가방에 화장품과 과자들을 가지고 오셨다. 학용품과 비누, 라디오 같은 작은 전자 제품도 있었다.

모두 미제였다. 미군 부대 매점에서 구매한 물건을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팔았던 아줌마를 우리는 ‘미제 아줌마’라고 불렀다.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 미제 아줌마가 오시면 어머니는 주로 화장품을 보셨다.

가끔은 우리 남매를 위해 캔에 들어있는 콜라와 사이다 같은 음료를 사주셨는데, 그 당시에는 모든 음료가 병에 담겨 있었던 터라 캔에 들어있는 음료를 마시는 것은 대단한 기쁨이었다.

한국의 제품들이 미제와 견주어 뒤지지 않게 될 무렵, 미제 아줌마는 더 이상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았다. 80년대부터는 비누, 화장품, 전자제품, 학용품, 과자, 의류 등 한국 제품들의 질이 세계 수준으로 좋아져서 더 이상 미제라는 이유만으로는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만든 상품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아서 미국 시장에서 팔리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 가족이 99년에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면서 많은 한국 제품들을 그리워했다.

오늘 미국 어디를 가든지 길에서 만나는 한국 브랜드의 차량들을 보면서 아들은 한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들 중 하나라고 여긴다. 한국산 가전 제품들이 대형 매장에 전시되어 팔리고, 한국산 휴대폰이 미국인들의 손에 있다. 정보 통신 분야에서의 발전은 아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사귀고, 거래를 하며, 교육을 하는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러 국가의 많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우선 신제품을 판매한 후 그 반응을 보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진 탓은 아닐까? 아들의 머리 속에는 그야말로 한국이 선진국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미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다.

아들에게 ‘미제 아줌마’를 말해 주다보면, 나는 분단과 남북 대치라는 한국의 현대사를 알려주게 된다.

전쟁 이후, 개발 도상국가에 미군이 주둔했고 아직 한국 경제가 좋은 제품을 생산하지 못할 때 존재했던 독특한 유통(?) 방식이라고 말해 준다. ‘미제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오시면 무언가 좋은 것이 생길까 기대하면서, 미제라면 모두 좋은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 후에 내가 미국에 살면서 한국 제품을 그리워 할 때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에서 아들과 한국 차를 운전해서 여행을 하고, 한국에서 만든 악기를 구하러 돌아다닐 줄이야.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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