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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육 여사 쓰러뜨린 비운의 흉탄···35년 전 8·15의 못 잊을 비극

1950년 8월 피란지 부산의 영도다리 옆 한 음식점. 맞선을 보던 26세 육영수는 이날 군화를 벗고 있는 34세 박정희에게 반했다.

"그는 뒷모습이 참 든든했죠." 얼굴은 속일 수 있어도 뒷모습은 못 속인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부친은 전란 중에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군인에게 딸을 주는 게 불안해서 반대를 했다. 하지만 딸의 마음을 꺾진 못했다. 그해 12월 12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를 맡은 허억 당시 대구시장(작고)이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이라고 잘못 말하는 바람에 식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52년 7월 박정희는 '영수의 잠자는 얼굴을 바라보고'라는 시를 짓는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그대의 그 눈 그 귀 그 코 그 입/그대는 인(仁)과 자(慈)와 선(善)의 세 가닥 실로써 엮은/ 한 폭의 위대한 예술."

74년 8월 15일 아침 청와대. 광복절 기념식 참석 준비를 하고 있는데 육 여사의 어머니 이경령 여사가 청와대 2층에서 내려왔다. 영부인은 문을 나서며 "어머니 오늘 주사 맞으시고 이따 텔레비전 꼭 보세요. 제가 나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국립극장 앞에서 대통령이 성큼성큼 걷자 뒤에서 아내는 말한다. "저 좀 보세요. 천천히 함께 가세요." "그래. 속도를 줄일 테니 당신은 속도를 좀 내시오." 마지막 대화였다.

오전 10시6분 대통령이 축사를 시작했을 때 탕 탕탕 총소리가 들렸다. 단상에 앉아 있던 영부인의 상반신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사진> 대통령이 나직이 소리쳤다. "저기 우리 식구한테 가봐."

소란이 가라앉자 대통령은 연설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거의 변함없는 목소리로 연설문을 끝까지 읽었다. 퇴장 때 그는 아내가 앉았던 피투성이 초록색 의자에서 고무신 한 짝과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범인으로 체포된 재일동포 문세광(당시 23세)은 그해 12월 20일 사형된다.

8월 16일 청와대 빈소. 대통령은 눈물을 매단 채 말했다. "언젠가 한센병 환자를 방문했을 때 저 사람은 일일이 악수를 하더군. 그 뭉개진 손을 꼭 쥐어 내게 건네주기도 했지. 그래서 나도 선뜻 그 손을 잡았어."

지난해 육 여사가 목숨을 잃은 현장인 국립극장에서 연극 '육영수'가 상연됐다. 육 여사가 아르헨티나의 에비타에 비견되는 건 사심 없고 열정적인 인간미 때문이 아닐까.

이상국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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