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기억이 '영웅 김영옥' 을 만든다
곽재민/사회부 기자
미군 최초의 유색인 대대장으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영웅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딴 중학교가 문을 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김영옥 대령이라는 인물이 재조명되며 커뮤니티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일본계 단체가 추진중인 김영옥 도로 명명안 소식이 전해졌고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돼 온 김영옥 대령 '명예훈장'(Medal of Honor) 추서 캠페인까지 힘을 얻고 있다.
취재 기자로서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어떤 소식보다 반가웠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움직임들이 흐지부지 사그러들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앞선다.
지난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아시안계 미군들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했고 22명 동양계 미국인이 선정돼 명예훈장을 받았다.
당시 미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희생과 노력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명예훈장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본 커뮤니티는 각계에 영향령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22명 중 21명의 일본계 미국인이 명예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당시 김 대령은 최종 명단에까지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 탈락해 진한 아쉬움을 남겼고 이 문제는 잠잠해졌다.
뒤이어 2003년엔 한인 커뮤니티와 일본 커뮤니티가 대대적으로 김 대령의 명예훈장 추서 캠페인을 벌여 연방의원들을 비롯 각계 인사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수 천명의 서명까지 받았지만 실패했다. 또 다시 이 문제는 조용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의 저자 한우성씨는 이 문제에 대해 "100년이 넘는 이민역사에서 단 1명의 한인도 명예훈장을 받지 못한 것은 한인사회 정치력의 현주소"라고 꼬집었다.
한씨는 또 "한인 사회의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하지만 김 대령의 명예 훈장 추서를 위해 정치인뿐만 아니라 타 커뮤니티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하며 조용히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영웅에 대한 기억은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김영옥 중학교의 탄생과 맞물려 적어도 그 이름만은 남게된 것이다.
단발성에 그치는 거창한 기부 행사와 요란한 서명 운동보다 아이들 손을 잡고 김영옥 중학교를 한 번 찾아가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그가 누구였다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말이다.
차를 타고 학교 앞을 지나며 '김 영옥이 누구였지' '무슨 일을 한 사람이었지'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다운타운 리틀 도쿄엔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 기념비가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김 대령이 이끈 '고포 브로크 부대' 이름을 따 설립된 재단이 만든 것이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오전 그 곳에선 80대의 일본계 미국인 3명을 만날 수 있다.
2차 대전 참전 용사인 이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념비를 닦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웅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이 얘기하는 전설적인 영웅은 바로 김 대령이었다.
이 노병들은 이렇게 우리 영웅의 기억을 세상에 남기고 있었다. 기억되지 않는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우리 영웅이 한인들의 기억속에서도 잊혀지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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