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와 지금] '신데렐라 복서' 제임스 브래독, 대공황기 서민들의 영웅 되다
대공황의 그늘이 짙어만 가고 있던 1935년 6월 13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경기장에서 권투 역사상 보기 드문 세기의 결전이 벌어졌다. 세계 헤비급 챔피언 맥스 베어(오른쪽)와 도전자 제임스 브래독(왼쪽.1906~74)은 시합 시작 몇 시간 전 체중 검사를 했다.베어는 멋진 몸매에 매력과 재치가 넘치는 사람으로 복서라기보다는 만인의 연인이었다. 뉴욕 일류 호텔에 살면서 멋진 야회복을 차려입고 화려한 레스토랑과 호화 나이트클럽을 오가는 그는 수프 배급을 받으려고 길게 줄 서 있는 거리의 풍경과 완벽한 대조를 보였다. 베어에게는 주식 폭락 같은 것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도전자 제임스 브래독은 대공황 때문에 좌절을 맛봐야 했다. 모아둔 돈은 대공황 초기에 다 날렸다. 자존심이 꺾인 채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그는 처음에는 부두 노동직을 찾아 나섰고 그런 기회마저 없을 때는 구제기금 신세를 졌다.
그러나 브래독은 불과 몇 달 사이에 기사회생 했다. 부두 노동직과 정부 구호금을 뿌리치고 세계 챔피언 도전자의 위치로 도약한 것이다. 경제난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은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이기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브래독은 해냈다. 브래독이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을 때 그는 역대 챔피언 중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가 대중에게 그토록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링에서 보여준 비범함이나 카리스마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브래독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민은 브래독에게 압도당했다. 이 완벽한 영웅! 겸손하며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웃 친구 아내와 세 아이가 있는 훌륭한 가장 대공황의 희생자 너무나 가난해 구제 기금으로 살아야 했던 남자. 미국민은 패배자에서 스포츠 최정상에 오른 인물의 이야기에 고무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포츠 동화의 원형이 된 브래독은 도전자 시절 '신데렐라 맨'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의 이야기는 2005년 러셀 크로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암울한 시대에 브래독은 서민의 영웅이었다.
역대 헤비급 챔피언 중 '보통 사람'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은 브래독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치맛바람.바지바람으로 만들어진 요즘 스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자연산' 영웅의 매력과 감동이 있었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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