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이승만 전 대통령 경호원 박용균씨의 '영원한 각하' <1>
하와이행 비행기 오르며 '젊은이는 남아…'
기내서 수행원들에 '내려라'…대통령 내외만 외롭게 떠나
박씨는 1958년 8월부터 이 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떠난 1960년 4월까지 18개월간 그의 경호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이 대통령이 박씨에게 ‘영원한 각하’로 각인되기엔 충분할 만큼의 시간이었다. 격동의 시절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과 함께 청춘을 보낸 박씨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1960년 4월29일.
이날은 박씨가 이 전 대통령을 상면한 마지막 날이다.
4.19를 계기로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날 하와이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김포비행장에 도착했다.
이 전 대통령의 수행원(당시는 경호원을 수행원이라고 불렀음)이었던 박씨는 떠나는 '각하'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각하와 함께 하와이로 떠나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직속상관인 김창근 계장이 '사복으로 갈아입으라'고 지시하는 거야. 사복이 없어서 동료 곽영서 수행원의 옷을 빌려 입었지. 내가 영어가 된다는 이유로 하와이까지 동행하란 지시였어."
언제 돌아오라는 지시도 받지 못한 채 박씨는 각하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엔 각하 내외 외에 4명쯤이 더 타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각하가 입을 뗏다. "젊은이들은 남아 한국을 부흥시켜야 한다. 다들 내려라."
숙연한 침묵 속에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비행기엔 승무원과 이 대통령 내외만이 남았다.
박 수행원은 이륙한 비행기가 수평선 멀리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응시했다.
"마음이 참 아프더라고. 그렇게 끝까지 한국을 위하셨는데 결국 이역만리 하와이에서 별세하셨잖아."
박씨가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매개는 '유도'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유도를 배운 박씨는 국제대에 유도선수로 진학했다. 실력이 출중했던 박씨는 1956년 경무대(후일의 청와대 구관)내 상무관에서 유도와 검도를 수련하게 됐다.
"그 때는 경무대 경찰서의 수행계 소속 경찰들이 대통령 경호를 맡았어. 난 경비계에 속해 경무대 안내 역할을 맡았고. 경무대 경찰들이 상무관에서 운동을 하다 대회가 있으면 상무관 소속으로 출전하는 거야."
박씨는 1958년 수행원이 됐다. 그 해 박씨는 전국대회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소속팀 상무관은 단체전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 이 전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박씨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대통령 수행원 임무는 녹록치 않았다. 시설 장비가 모두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당시의 열악한 상황은 대통령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각하가 진해의 별장에서 지신도란 섬으로 낚시를 가면 말야. 인천항에 정박중인 미 8군 사령관 보트를 빌려 탔어. 아마.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그 땐 그랬어."
임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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