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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힘없는 자는 늑대 떼 속의 양' 열강 외면 속에 이준 열사 순국

1907년 7월 1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준은 순국했다. "우리나라를 도와 달라. 일본인들이 우리를 짓밟고 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고종이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상설.이위종(사진 왼쪽부터.국사편찬위원회 제공)을 밀파한 이유는 평화회의 앞 친서에 잘 나타난다.

"강포한 이웃의 침략이 날로 심해져 외교권과 자주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우호의 정의와 약자를 돕는 의리를 베풀어 여러 우방들이 널리 의논하여 우리의 독립과 국세를 지키게 해주오."

그러나 힘의 정치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현실은 냉혹했다.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는 영국 대표에게 이준은 항변했다. "오늘 영국 대표의 말은 조.영 수호조약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약소국가를 박해하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영국의 신사도는 그렇게도 강약에 따라 변하는 도인가?" 그러나 그의 외침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평화회의는 약자를 돕는 회의가 아니었다.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인류가 아닌 국가의 이익에 복무하였다. 을사조약은 국제적으로 논의될 소지가 없었으며 한국이 주권을 앗긴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7월 20일자 뉴욕 타임스의 기사는 당시 분위기를 잘 전해 준다. "결국 조선은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전쟁의 희생물이 될 운명이었다. 지난 전쟁에 대한 판정이 변경되지 않는 한 조선의 완벽한 일본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후 고종은 강제 퇴위되었고 군대는 해산되었으며 정미조약으로 우리의 국권은 더욱 훼손되었다. 이준을 헤이그에 묻은 이틀 뒤인 9월 5일 특사들의 임무는 끝났다. 그때 우리의 친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돌아온 제국의 시대를 맞아 대한제국의 슬픈 역사가 우리의 진로를 비추는 등대로 다가서는 오늘. 징전비후(懲前毖後)의 리더십에 목이 타 들어간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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