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엄마같은 가디언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열성때문에 부모를 떠나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는 한국 청소년들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요즘이다. 중고생들이 많고 초등생도 있다.그리고 이들이 숙식을 하며 지내는 곳 또는 그 형식을 홈스테이라고 부르며,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가디언이라 부른다.
과거에는 가디언이 집 떠난 학생의 자고 먹고 입는 것을 챙기는 것을 중요시했지만, 근래에는 점점 학업을 지도하고 생활을 관리하는 기능을 중요시하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의 시기가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할 일, 즉 공부를 등한히 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부모와 함께 살아도 공부를 위해 전념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집을 떠나 다른 사람의 지도 아래 하루 하루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은 가디언과 학생 상호간의 원활한 소통은 물론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공부를 하기 위한 여건 조성은 기본이고, 심리적인 안정을 갖도록 세심한 배려가 따라야 한다. 지난 학기에는 가디언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일이 있었다.
아들이 참여하여 노래하는 학교 합창단의 공연이 있던 날, 남학생들만의 합창이 한 순서 있었다. 노래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남학생들이 정렬을 하고 있을 때, 안내가 흘러나왔다. “다음 곡은 우리들의 엄마들에게 바치는 노래입니다. 아들이 앞에 있는 엄마는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무대 앞 좌석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무대 위의 아이들은 모두 손에 장미를 들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엄마들에게 드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내가 앞으로 나갔다.
노래는 유명한 노래 ‘My Girl’을 ‘My Mom’으로 부분 부분 개사한 곡이었다. 모두가 웃으며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마자 아이들은 무대를 내려와 엄마들에게 꽃을 드렸다. 꽃을 받은 엄마들은 한결같이 아들을 안아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들과 엄마간의 사랑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무대였다. 그 때 나의 머리를 잠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행사에서 만일 부모가 한국에 있는 아이는 누구에게 꽃을 드릴까? 또 영어가 서툰 엄마가 안내를 이해하지 못해 앞에 나가 있지 않는다면 노래를 마친 아들은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남의 아이들도 소중하고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는데, 더우기 미국 땅에 와서 살면서 자녀 교육을 하니 다른 이들의 자녀들에게도 각별히 눈이 간다. 할 수 있다면 서로 도와 모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많은 한계가 따른다.
가디언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 이상의 어려움과 희생이 있을 것이다. 학생이 미국에 오기 전의 환경과 성장 과정도 제각각 달라서, 부모도 아닌 입장에서 아이들을 이끄는 것은 정말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종종 들려오는 가디언과 홈스테이 학생들간의 불화 이야기는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지도를 잘 따르지 않는 아이들을 이끄는 것처럼 힘든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부모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가디언들 중에는 아이들이 공부 이외에도 각종 활동을 하도록 적극 돕는 가운데 여러가지 발표회도 꼬박꼬박 가는 분들이 계시다. 스포츠 게임마다 가서 응원을 하는 가디언도 있다.
가디언이 ‘하숙’집 아줌마 아저씨가 아니라, 성장기의 중요한 시기의 아이들을 이끌어 공부하게 하면서 다른 활동도 적극 돕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라 한다면, 시대가 급변하고 교육 환경도 다른 미국 땅에서 오늘 가디언을 하시는 분들은 더욱 그 역할이 중요하고도 힘든 것 같다. 어려움 가운데 아이들을 이끄는 가디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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