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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러시아 차르 흉내내려던 고종, 국민국가 수립 여망 저버리다

한 세기 전 시대적 과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막고 근대 국민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1897년 10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약 13년간 존속한 대한제국 시기는 국민국가 수립을 꿈꿀 수 있던 마지막 기회였다.

특히 민권을 외치던 독립협회(1896~98)가 해산된 뒤 이 과제를 두 어깨에 짊어진 이는 고종이었다. 그의 지도력에 대한 당대의 세평은 호평과 악평이 대척점을 이룬다. 대한제국 이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던 1896년 10월에 나온 '코리언 레퍼지터리'는 "폐하는 진보적이다.

서양인들 제도들과 관습들에 적대적이지 않다. 그는 교육적인 일에 아주 관심이 많으며 최근 수년간 물질적인 진보들이 이루어졌다"고 해 그의 지도력과 '진보적' 정치성향을 호평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들어서고 입헌군주제를 세우려 했던 독립협회의 민권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자 고종에 대한 반감은 높아만 갔다. 의회 설립을 주도했던 윤치호는 1898년 11월 5일자 일기에 '독립협회 해산과 헌의(獻議) 6조에 서명한 대신들을 파면시킨 칙령'을 발포한 고종에 대한 실망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제정 러시아에 기대어 등장한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에 따르면 황제는 육해군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관리임명권 조약체결권 사신임면권 등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차르 복장을 입은 고종(사진 왼쪽 옆은 순종)의 모습이 웅변하듯 그때 고종은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따라 배우려 했던 인권의 시대 근대를 역행한 전제군주였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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