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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중세엔 죄악을 뜻하던 줄무늬, 미 독립 계기로 '자유의 상징'

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시원스러운 줄무늬의 '성조기'다. 1789년 7월 14일의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삼색기'다. 둘 다 공통으로 줄무늬를 채택했다.

줄무늬가 서양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3세기 중반 가르멜수도회 수도사들이 줄무늬 망토를 걸치고 파리에 들어오면서였다. 그때 파리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면서 그들을 경멸했다.

중세 유럽인들에게 줄무늬는 곧 '다양성'을 의미했다. 요즘은 다양성을 젊음.관대함.활달함 같은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중세에는 다양성이 죄악과 지옥을 연상시키는 개념이었다. 그런 인식은 동물에게도 적용되어 호랑이.하이에나.표범 같은 줄무늬 동물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중세 말기에는 심지어 얼룩말마저 잔인한 동물로 간주하면서 '사탄의 지배를 받는 동물'에 포함시켰다. 중세 기사도 소설에서 영웅은 언제나 백마를 타고 나타나지만 배신자.악당.이방인은 여러 색이 섞인 말을 타고 등장하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었다.

부정적 이미지의 줄무늬는 1920년께 미국 앨커트래즈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기결수의 옷차림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사진).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간수 가운데는 중범죄자 오른쪽은 탈옥하다 잡힌 재범자다.

긍정적 의미의 줄무늬는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더불어 획기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낭만과 혁명'을 뜻하는 줄무늬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줄무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유럽에도 급속히 퍼졌다.

프랑스는 아메리카 식민지를 지지하고 영국을 적대시하면서 미국적인 것에 끌렸다. 미국의 건국 초기 13주를 뜻하는 13줄의 깃발은 자유 등 새로운 이념의 상징물로 부각되었다. 이때부터 줄무늬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줄무늬 옷을 입는 것은 영국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삼색기를 비롯해 다양한 줄무늬를 채택했다. 줄무늬 옷을 입는 것은 애국자임을 드러내는 일이자 혁명 이데올로기를 적극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줄무늬 연미복을 착용한 것으로 유명했다.

삼색기가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원형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삼색기의 아류에 해당하는 국기가 유럽 각국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20세기 군사.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18세기 이미 '줄무늬'로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고 있었던 셈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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