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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지금] '수십 년 익힌 무공도 소용 없다' 화약, 중세 유럽의 '비대칭 전력'

핵무기는 군사적으로는 '비대칭 전력'으로 불린다. 전차.대포.함정 같은 기존 전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무기인 데다 단 한 발만 사용해도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대칭 전력은 중세 서양에도 있었다. 화약이었다. 화약은 중국에서 발명됐지만 그것을 파괴적 목적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중세 말기 서유럽이었다. 대포는 1330년께 처음 사용됐다. 초기의 대포는 너무나 원시적이어서 대포 앞쪽보다 뒤에 있는 편이 더 위험하곤 했다.

그러나 15세기 중반에 이르면 성능이 크게 향상돼 전쟁의 양상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대포는 1453년 두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스만 튀르크는 대포를 이용해 유럽에서 가장 함락하기 어렵다던 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렸고 프랑스군은 보르도를 함락함으로써 백년전쟁을 종식시켰다.

역시 14세기에 처음 발명된 총은 그 후 점차 완성도가 높아졌다. 1500년께 이후 새롭게 등장한 '머스킷 총' 덕분에 기병은 일거에 보병으로 대치됐다. 창검을 손에 익히고 말을 다루는 데 일생을 바친 고귀하고 용맹스러운 귀족 기사들은 기사도라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는 천민 출신 보병의 총 한 방에 목숨을 잃을 수 있게 됐다.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디시플리니 성당에 있는 1485년의 프레스코화 '죽음의 승리'(그림)는 화약 등장 무렵의 정서를 표현했다. 총은 희생자의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한 방'에 보낼 수 있으며 우리의 마지막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절망적 상황을 전해 주고 있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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