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없어도 할 수 있다
17년 전 아들이 태어나던 날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날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아들의 태어남을 축하하던 날, 나는 신생아실에 가 아들의 손을 보고 그만 쓰러질 뻔 했었다.아들의 오른손 가운데 세 손가락이 마치 약물에 의해 녹아버린 듯 형태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이제 막 태어난 핏덩이 아들의 손에 잉크를 묻히고 탁본을 만들려 하다가, 황급히 나에게 연락을 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그런 것일까, 나는 그 날 밤 한숨을 못이루고 병원 복도에서 안암동 야경을 내려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왜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에게 온전한 손을 주시지 않았는지 수도 없이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한숨과 눈물 속에서도 아들은 무럭 무럭 자랐다.
부족한 세개의 손가락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 것만 같았던 아들은 밝게 자라서 유치원을 갔다.
또 어린 아들이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동네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학교를 다니던 모습은 지금 기억해도 정겨운 장면이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놀다가 들어오던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걱정이 지나쳤음을 알게 되었다. 늘 엉터리 아빠인 나는 그 때, 아들이 손가락때문에 친구들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할 것을 적정했었다.
조금만 다르고 부족하면 무시하고 따돌리는 풍토에서, 그렇게 어린 아들이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 학교를 잘 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함께 놀고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과 헤어져 미국에 올 때, 아들은 친구들과의 헤어짐을 안타까워했다.
그 후 아들이 미국에 와서도 순조롭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들이 부족한 손가락으로 인해 무언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달려들어 하면 무엇이든 성취한다는 평범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하나만 빼고는.
교회 성가대 반주자 생활을 20년 넘게 한 아내는 동네 꼬맹이들을 모아서 피아노를 가르쳤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을 매일 보면서도 아내는 정작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수 없었다.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세개 부족한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교본과 음악이 온전한 손들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아는 나와 아내는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아들에게 잠시 배우라고 했지만 아들이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을 때, 아내는 다그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그만 두었다.
미국에 온 후, 초등학교에서 아들은 오른손 손가락을 쓰지 않는 악기 가운데 바이올린을 배워 연주했다. 그리고 중학교에서부터는 트롬본을 불었다. 고등학교에서 재즈밴드까지 참여한 아들이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음을 기뻐했다.
그런데 하루는 아들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기가 모은 돈으로 기타를 사러 간 악기사에서 한 번도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아들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니 이 아이가 언제 피아노를 배웠나, 나의 머릿속에는 많은 질문들이 연쇄적으로 떠올랐다.
아들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남성합창단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다가, 어디선가 좋은곡을 들으면 자기들이 부르기 좋게 편곡을 하곤 했는데, 결국 학과목으로도 AP 음악 이론을 수강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편곡하는 일을 능숙하게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아들은 피아노 대신 컴퓨터를 이용해서 편곡을 하고 작곡을 했다.
사실 옛날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아들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작곡을 하고, 컴퓨터로 자기 음악을 연주시킨다. 컴퓨터는 현악 사중주도 교향악단의 연주도 모두 해준다. 그런 가운데 아들의 음악 지식이 늘어났고, 배운 적 없는 피아노이지만 흉내를 내게끔 된 것 같았다.
나의 놀라움은 아들이 양손을 다 써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는 사실이었다. 거의 없는 손가락, 3분의 1마디도 없는 그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마치 아들에게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없는 것만 보고 가르치지 않았는데, 너는 혼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쓰는구나.’
아들이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하여, 그 편에서 생각하고 그 길을 가게 하기 위해 준비하는 요즘이다.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없는 것을 볼 줄 알고 쓸 줄 아는 아들을 믿는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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