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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이란 소녀'와 '네이팜 소녀'

박용필/객원 논설위원

"전쟁터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카메라다."

미국의 포토 저널리스트 에디 애덤스가 유언처럼 남긴 말이다. 그는 1968년 2월 '사이공식 처형' 사진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은 AP 통신의 종군기자. 월남 경찰국장이 손이 뒤로 묶인 베트콩을 향해 무덤덤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전쟁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진 한 컷. 베트남전을 '자유' 월남과 '공산' 월맹 간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려했던 미국의 시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진은 반전시위에 불을 지펴 미국은 이후 베트남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4년 후 사진 한 장은 또 한 번 세계를 경악으로 몰아 넣는다. 이른바 '네이팜 소녀'로 불리는 사진 때문이다. 월남군의 공습으로 온몸에 중화상을 입은 아홉 살 짜리 어린이가 벌거벗은 채 거리를 달리는 모습을 AP통신의 닉 우트기자가 카메라로 담아냈다.

사진 설명은 짤막했지만 그 어떤 빼어난 글보다 더 생생하고 치열했다. 겁에 질린 소녀가 울부짖으며 한 말은 두마디. "정말 뜨거워요 살려주세요."

사진은 전 세계로 타전돼 전쟁의 야만성과 비극을 고발했다.

1972년 들어서 베트남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자 닉슨은 극단적인 처방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원폭 투하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이 사진으로 인해 미국은 핵 사용은 커녕 베트남 철수의 수순을 밟게 된다. 최강의 군대가 흑백사진 두 장의 힘에 굴복하는 수모를 당하고 만 것이다.

이처럼 격동의 순간을 카메라로 잡아 역사의 물줄기를 요동치게 만든 포토 저널리스트. 요즘은 카메라 대신 휴대폰을 든 '시티즌 저널리스트' 곧 '시민기자'들이 불의의 현장을 두눈 부릅뜨고 지키고 있다.

'이란 여대생' 네다의 죽음도 그와 함께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던 평범한 시민이 셀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게 국제사회를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CNN도 못한 일을 해 낸 시민기자들. 네다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동영상은 유튜브와 페이스 북 등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퍼져나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정치적 행동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선 가슴에 총탄이 박힌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며 시위에 참가했다가 불행히도 그렇게 죽어갔다.

'이란 여대생'은 죽어서 '민주화의 성녀'로 불려지게 됐지만 '네이팜 소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나 평화의 전도자로 거듭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킴 푹. 14개월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미국인 의사의 수술로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월남 패망후 그는 공산정권 하에서 반미.반제국주의의 아이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푹은 훗날 한인의 도움으로 캐나다에 망명 이젠 서방세계에서 자유를 길게 호흡하며 살고 있다.

무려 열일곱 번의 수술로 인한 고통으로 세상을 증오했다는 푹. 얼마 전 남가주 뉴포트비치의 리버티 침례교회에서 신앙간증을 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나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게 됐다. 그제서야 비로소 행복과 사랑이 보였다."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긴 푹은 "나를 더 이상 전쟁의 상징으로 기억하지 말아달라"며 유엔의 친선대사로 변신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폭력이 있는 곳에 화해를 독재가 있는 곳에 정의를…. 마치 네다가 못다 이룬 꿈을 자신의 몫처럼 생각하며.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우리가 가꾸고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란 여대생'과 '네이팜 소녀'가 오늘의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은 이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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