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은 '아버지날'···딸이 띄우는 '아빠 사랑'
안젤라 이씨 '효 에세이' 입상작
나는 아직도 '아빠'라고 부른다. 남들은 마흔이 넘어 아버지라고 해야 한다지만 나는 '아빠'가 좋다. 세 딸과 막내 아들이 울먹일 때마다 아빠의 첫마디는 항상 "걱정 하지마"로 시작하셨는데 우린 그말 그대로 별 걱정 하지 않고 자랐다.
공부를 못해도 주사맞기 무서워 집으로 도망쳐와도 남의 집 유리창을 깨트려도 아빠는 항상 걱정 하지말라며 토닥이셨다.
특히 우리 아빠는 딸들에게 더 다정다감하다. 어릴 적 학교 가는 세 딸의 머리를 직접 물 묻혀가며 빗겨주셨다.
똑같은 옷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셋이 걸어가면 보는 사람들마다 예쁘네 귀엽네 한마디씩 했다. 그때 마다 아빠는 "제 딸 들이에요"하시며 가슴 뿌듯해 하셨다. 애지중지 키운 딸들이 둥지를 떠날 때면 아버지 사랑은 더 애틋했다.
언니가 시집갈 땐 '오른 팔이 잘라진 것 처럼 아프고 허전하다' 하셨고 막내딸 짝 찾아갈 땐 '이젠 집이 텅 비었네' 하셨다. 집이 아니라 마음이 텅 비었다는 뜻이었을 게다.
튼튼한 울타리 같은 아빠가 얼마전 '뚝뚝' 우셨다. 태어나 처음 보는 아빠의 눈물이었다.
형부의 폐에서 발견된 암덩어리 때문이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저 굳게 입을 다물고 담배만 피우시던 아버지가 형부 소식을 들으시곤 목이 메어 말 없이 우셨다.
그리고는 "살만큼 산 내가 암을 가져와서 대신 죽어 주고 싶다"고 하셨다.
고민 때문에 요사이 부쩍 여위셔서 그런지 할아버지 얼굴이 되어버렸다. 주름살도 늘었다. 한숨은 습관이 됐다. 내 하나 뿐인 아빠가.
그렇게 자식들은 짐만 안겨 주는데도 아빠는 오늘도 여전히 손자 손녀들에게 말씀하신다.
"걱정 하지마 할아버지가 다 해줄께."
이젠 아빠 딸이 말할 차례다. 걱정 하지 마시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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