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순종은 미국에도
미국에서는 ‘순종’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 수 있다. ‘자유’와 ‘개성’, ‘독립’이라는 가치가 강조되고 존중되는 이 땅에서 순종이라는 말은 마치 자유를 억압하여 개성을 누르는 단어로 인식되는 것 같다.유교의 영향이 큰 문화에서 부모와 연장자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운데 성장한 부모들은 순종을 중요한 덕목으로 배웠다. ‘윗사람’이라고 인식되는 사람의 의견을 존중했고, 부모와 스승의 말은 우선 듣고 실천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권위주의적인 의식을 분명 내포하고 있지만, 권위에 순종함으로써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질서를 유지하여 사회 구성원들 간의 혼란을 방지했던 의식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런 분위기에서 살던 부모와 자녀들이 미국에 와서 한결 자유롭고 경직되지 않은 환경을 만나서 적응해 간다.
순종이라는 단어는 서서히 멀어진다. 그러나 미국에도 순종이 있고, 미국인들도 순종을 가치있게 여긴다.
미국에서 대학 풋볼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학교 중에 노터데임 대학교가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이 학교의 게임이 매주 중계되고, 이 학교의 감독이 바뀌는 것이 CNN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이 학교의 풋볼팀은 유명하다. 이 학교 풋볼 팀을 소재로 나온 영화도 있으며, 이 학교의 응원가를 많은 국민들이 알 정도이다.
노터데임 풋볼 팀에는 ‘학생 매니져’라는 포지션이 있다. 게임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이 포지션은 언제 어디서나 팀 지도자들의 심부름을 하는 학생들을 일컫는다.
감독, 부감독, 체력 단련 코치, 포지션별 코치 등 대단히 많은 수의 지도자들이 한 팀에 있는데,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심부름을 시킨다. 그러면 학생 매니져들은 아무 말없이 즉시 움직인다.
물과 수건을 가져다 주고, 전화를 걸어준다. 사람을 데려오기도 하고, 물건을 사오기도 한다. 풋볼 팀이 모두 모여 학교 관계자들과 팬들을 초청해서 하는 행사 중에도 지도자들이 부르면 즉시 움직인다. 이유를 묻지 않는다.
지도자가 하는 일과 지도자의 지시에 일체 의문을 가지지 않고 지시받은 바를 실행한다. 학생 매니져들의 순종하는 모습은 같은 미국인들이 보아도 눈을 크게 뜰 정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학생 매니져로서 지도자들의 심부름을 하던 학생들이 후에 하나같이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한다. 수십년 동안의 기록을 보면, 선수 시절 학생 매니져를 했던 학생들이 거의 모두 성공적인 기업인들이 되었으며, 기업의 대표가 아닐 경우도 모두들 거대 기업의 간부가 되었다.
이 학교 풋볼 팀의 감독을 오랜 기간 맡았던 루 홀츠 감독은 그 이유를 젊은이들이 순종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 사회가 자유 분방하고 모든 일에서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순종하는 사람, 남의 말을 존중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찌 보면, 다들 자기 소리를 내고 매사에 이유를 따지니, 이유 있고 당연한 일을 하는 때조차도 지도자들이 애를 먹을 것은 짐작이 간다. 자유에도 책임이 따르고, 평등한 가운데에서도 구별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미국 사회는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가운데 순종도 인정하고 배울 것을 요구한다.
보이스카웃, 걸 스카웃에서 가르치는 것과, 많은 스포츠 클럽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덕목 중 ‘순종’은 늘 수위에 오른다. 미국 사회도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을 환영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직과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기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을 미국 사회도 찾는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은 부모들이 미국에 온 후, 우선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미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 체계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제도와 문화의 밑바닥에 흐르는 국민 의식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처음에 순종이라는 단어가 미국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그 보다는 개성과 독립이라는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져서 아들에게도 순종을 강조하지는 않았었다.
미국에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순종이라는 단어가 크게 느껴진다. 미국인들은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순종의 가치를 잃지 않았는데, 권위적인 문화에서 자란 우리 부모들이 미국에 와서 상대적으로 순종의 가치을 잃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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