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와 지금] 110년 전 여행가 비숍이 본 조선
'푹 썩었지만 시민사회 가능성도'
그녀는 1892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영국지리학회 회원이 된 이듬해 한국여행을 마음먹었다.
1894년에서 1897년에 걸쳐 네 차례나 이 땅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살피며 체험하고 관찰한 바를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1897)에 담았다.
이미 일본과 중국 그리고 중동 등지를 탐사한 경험이 있던 그녀의 예리한 눈은 우리의 치부를 꿰뚫는다. "한국은 특권계급의 착취 관공서의 가혹한 세금 총체적인 정의의 부재 모든 벌이의 불안정 비개혁적인 정책 수행 음모로 물든 고위 공직자의 약탈 행위 하찮은 후궁들과 궁전에 한거하면서 쇠약해진 군주 널리 퍼져 있으며 민중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미신 그리고 자원 없고 음울한 더러움의 사태에 처해 있다." 그녀는 조선왕국에 대해 총체적 사망 선고를 내렸다.
비숍만이 아니라 그때 우리를 둘러본 서구인들은 한목소리로 어디에도 사회정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공적 영역이 총체적으로 썩어 문드러졌다는 사실을 아프게 꼬집었다. 선진과 후진 진리와 미신 문명과 야만 합리와 비합리 강자와 약자 타자와 자기 백인과 비백인 그리고 진보와 정체. 비숍만이 아니라 그때 서구인들은 이항대립의 눈으로 한국을 낮추본 것도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한 민족이므로 정직한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천천히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비숍이 예언한 대로 시민으로 진화한 오늘의 우리들은 개화기 서양인들이 남긴 우리의 특수성에 관한 관찰기록들을 편견의 산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청일전쟁 승패의 분수령이 된 전투가 벌어졌던 평양의 주민들이 일본군을 보는 시선에 대해 비숍이 남긴 기록은 우리의 상식에 반한다.
"사람들은 일본군을 아주 미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의해 평화로운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평양사람들은 근대적으로 훈련받은 일본군이 떠나고 나면 시민들의 권리를 얕보고 시민들을 무수히 폭행하고 강탈하는 한국의 구식군대가 그들을 괴롭힐까봐 매우 걱정했다." 일본의 침략과 수탈이 우리의 주체적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우리 몫의 책임 찾기가 필요한 오늘. 실패의 역사를 거울 삼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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