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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노짱'과 '소중한 타인'

박용필/객원 논설위원

어렸을 적 경험했던 충격은 평생 잠재의식의 언저리를 맴돌게 된다. 그러다가 성인이 돼 비슷한 사건을 접하게 되면 옛 기억이 문득 떠올라 충격은 더욱 커진다.

'운남' 이승만의 장례식이 이런 경우다. 1965년 7월의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치러진 그의 운구행렬은 40 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종로 길을 꽉 메운 수십만 인파. 상투 틀고 갓 쓴 할아버지들을 비롯해 소복 차림의 여인네들까지 나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조선시대에 살아보지 못해 알 수는 없지만 그때도 임금이 붕어하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까.

'나랏님이 돌아가셨다. 불쌍해서 어떻게 하나.' 눈물을 흘리는 어른들을 현장에서 보고는 적잖은 쇼크를 받았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부정선거 다시 하라'며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형님들에게 발포명령을 내려 전국민의 분노를 샀던 이 박사가 아닌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4ㆍ19 혁명은 뭐란 말인가.

그의 유해가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서울로 돌아온 그날 호칭이 '살인마ㆍ독재자'에서 '나랏님'으로 바뀌었으니 어린 나이에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아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구나. 그가 저질렀던 죄악들이 모두 용서를 받다니….' 그때 어줍잖게도 '죽음의 미학'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승만의 장례식이 갑자기 생각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때문이다. '노짱'이란 친근감있는 이름으로 불려졌던 전직 대통령. 그런 그가 투신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해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일까. 검찰 소환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겠지만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도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재임시절 "반미 좀 하면 어떠냐" "북한의 핵을 자위수단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느냐"는 등 돌출성 발언으로 미주한인들에게도 속앓이를 하게 만든 그였다.

우익 세력들에게 '친북'으로 낙인 찍힌 정치인. 보수 정권이 들어선지 얼마 안 돼 가족과 친.인척 지인들이 부패혐의로 줄줄이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게 되자 이를 참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

노무현 추모 열기에 묻혀 있는 대한민국. 사회심리학적 표현을 빌자면 '노짱'은 이 시대의 'SO'로 자리매김한 듯한 느낌이다. '소중한 타인'(Significant Other)의 머릿글자를 따 만든 말로 혈육은 아니지만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다.

삶의 동반자 또는 스승이라고 할까. '노사모' 회원들을 비롯한 그의 지지자들에게 노무현이란 이름 석자는 이제 SO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노 전대통령. 어쩌면 이 한마디에 그의 정치적 유산이 담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보와 보수 역시 정치의 한 조각이 아닌가.

하지만 현실에선 양 측이 '공공의 적'이 된지 10년도 넘는다. 아직도 이분법적 사고의 덧에 갖혀 있는 한국사회. 그의 죽음이 이념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지 않을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비록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지만 그의 죽음이 '미학'으로 남는 길은 오직 하나 뿐. 진보와 보수는 서로 증오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라는 인식을 공유할 때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그는 유언장에서 이렇게 당부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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