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된장아빠의 버터아들 키우기···영재보다 상상력
아들이 네 살 때 서울 거리의 차량 모델을 모두 외워서, 지나가는 차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말하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주차한 차량 위에 포장을 씌워도 그 속의 차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맞추었다.한국차와 수입차를 막론하고 어린 아들이 그 디자인을 모두 기억했던 것은 미니카를 좋아하던 아들에게 아내가 자주 미니카를 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이 약 20여 종류의 차들을 구별하는 것을 보면서, 반복적인 학습이 주는 결과를 아들을 통해 보았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보며 몇몇 사람들이 영재, 수재 운운하면서 칭찬인지 과찬인지를 했었다. 어린 아들이 거의 모든 차량의 이름을 정확히 대니 놀랍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반복적인 학습의 결과이지 아들의 두뇌가 선천적으로 뛰어나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아들은 영재가 아니었다. 영재의 기준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나는 아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기억하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어주고는 그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했고, 두 이야기를 합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아들은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나는 아들의 상상력을 칭찬하면서 그런 아들과의 시간을 즐겼다. 아들은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 다른 동생을 하나 더 추가해서 동생들이 연합해서 형을 혼내주는 아야기를 꾸몄다.
해와 달이 된 남매가 호랑이에 쫒길 때는 헬리콥터가 등장해서 남매를 구출했고,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에서는 산신령이 어딘가를 간 바람에 도끼를 잃어버린 나뭇꾼이 직접 연못에 잠수를 해야 했다. 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뭇꾼이 금도끼를 찾기를 원했다. 나는 아들과 더 엉뚱한 이야기를 만드느라 말도 안되는 막장 동화(?)를 만들면서 행복했다. 아들이 세 살, 네 살 때였다.
오늘 우리는 자녀들의 영재성을 찾고 싶어한다. 모두가 다 자녀들을 영재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영재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서 그대로 따라 한다고 우리 자녀가 영재가 되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개개인이 다르고 부모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영재성을 소위 선행 학습의 성취로 착각한다.
지금 4학년인데 6, 7 학년 과목을 공부하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해서 그 아이가 과연 영재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선행 학습이지, 영재성(gifted and talented)과는 무관하다. 영재들은 선행 학습을 할 수 있지만, 선행 학습을 하는 모두가 영재는 아니다.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를 공부하면서도 독창적이지 못할 경우 자녀들은 성취를 경험하기 힘들다. 부모의 지도에 의지해 소위 영재 교육을 받아 명문대를 간 사람이 그 분야에서 후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가지 못하고 다시 다른 공부를 하는 경우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영재 교육이 소위 명문고교와 명문대 입시를 염두에 둔 단어가 된 것 같은 요즘, 바람직하다는 길을 따라 부모가 자녀를 소위 엘리트 코스로 인도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방목(?)을 하면서 자녀들을 자유스럽게 키우는 것이 옳은지는 매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렇게 엘리트를 만드려 해도 모두 엘리트가 될 수 없고, 자유 방임으로 방목을 해도 후에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영재상은 분명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영재 교육을 타이틀로 걸고 발행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또 한국과 미국에서 어떤 학원에도 아들을 보낸 적이 없다. 그러나 아들이 오늘날 집에서는 우리말만 하면서도 영어 과목을 무난하게 하는 이유를 나는 그 옛날 우리가 함께 했던 동화 바꾸기 놀이에서 찾고 싶다. 아들의 상상력이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일 때 작동했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눈 앞에서 실험을 하는 것들 말고는 자신이 본 적이 없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학교 공부 아닌가? 이해라는 것이 상상과 연결된 것은 자명하다. 백설공주가 일곱 난장이와 함께 태권도를 익혀서 못된 왕비를 혼내주는 이야기를 어린 아들로부터 듣던 나는 얼마나 즐거웠던가?
페어팩스 거주 학부모 김정수 jeongsu_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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